설교
풍성한 말씀이 있게 하자(2016.9.18)
김소형 작성시간 2016-09-18 20:15 조회수 2828


설교제목 : “교풍성한 말씀이 있게 하자"
성경본문 : 골로새서 3장 16~17
설 교 자 :   담임사관
설 교 일 :  2016. 09. 18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묵상하며 생활하십니까? 말씀을 생활화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을 통독한다든지, 큐티를 한다든지, 필사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분은 하루의 한 구절의 성경을 묵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주일 설교의 본문을 가지고 더 깊은 말씀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런 저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이 없어서 집 안에서 뒹굴뒹굴하면서도 말씀 한 구절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서는 예수 믿는 것에 대한 회의, 자신의 믿음이 성숙되지 못한 것의 회의를 많이 갖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사관님, 하나님 말씀도 내가 마음이 편하고 삶이 편해야 가능한 거지 내가 살기가 너무도 빡빡한데 하나님의 말씀이 눈에나 들어오겠습니까?'정말 그렇습니까? 삶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라는 겁니다. 성경에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심지어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하려다가 주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복 된 사람입니다.

 

믿음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세어 볼 때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겠습니까? 자꾸 잘되는 사람은 신앙도 즐겁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사가 넘쳐 납니다. 감사가 넘쳐나니까 자꾸 교회가 그리워집니다. 교회가 그리워지면 말씀이 얼마나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 지 모릅니다. 말씀이 찰떡처럼 잘 들러붙으니 은혜의 감격을 소멸할 기회가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주의 인도하심을 늘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더 힘있게 봉사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 좋은 일과 감사, 신앙의 감격과 은혜, 그리고 주의 복을 늘 경험하고 살아가면 정말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잘 되는 사람이 더 잘되는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억지로 왔긴 왔습니다만, 설교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관님의 설교는 맨날 날 보러 하는 소리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 말씀도, 교회도 싫어집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 내 삶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교회를 떠나니 더 의욕이 없어집니다. 불안하기도 합니다. 힘이 빠집니다. 방황의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목회하던 교회의 사택에 변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변기가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겁니다. 기다렸다 또 내려야 했습니다. 만약 손님이 오셔서 볼일을 보면 화장실에서 몇 번이고 물이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볼일 한 번 보고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소비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기술자가 왔습니다. 우리 화장실의 변기의 물을 내려보는 겁니다. 역시 물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자가 말하길 “아, 이건 변기가 막혔거나 정화조가 막힌 것이 아닙니다. 이건 정화조와 변기사이 파이프에 진공상태가 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조그맣게 숨통을 하나 내 주면 간단합니다”하는 겁니다. 정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시원하게 배수가 되는 겁니다. 얼마나 시원하게 물이 내려가는지 화장실 가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안 된다구요?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을 하세요. 제가 주보에 매 주마다 성경을 적당히 읽을 분량을 드리잖아요? 그것이 내 삶에 그냥 숨통하나 뚫어 주는 겁니다. 그 조그만 숨통이 막힌 것을 시원하게 해결해 줍니다. 여러 사람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1. 정말 안 될 때 될 수 있는 가장 제일의 방법이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말씀의 묵상이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큰 비결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도를 하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행동은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우선적인 숨통이 됩니다. 말씀이 내 마음속에 있게해야 합니다. 그냥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나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 한가지의 방법이 나를 풍성하게 합니다.

 

제가 성경을 묵상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세요. 그냥 훌쩍 읽고 끝나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 이 말씀이 여기에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으며 왜 나는 이 말씀을 읽게 되었을까? 왜 하나님은 이 말씀을 나에게 읽게 하셨을까? 정말 곰곰이 따져보아야 합니다. 둘째, 말씀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묵상하고 해석하세요. 그냥 ‘이거야!’해서 내가 복음으로 만들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내가 복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정말 다양한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시고, 원래 주님이 말씀하시려는 의도를 잘 찾아내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천천히 되새기세요. 말씀은 천천히 그리고 긴 시간동안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국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잘근잘근 씹어야 진정한 영양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진한 감동이 옵니다. ‘그렇다!’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회개의 기도와 찬송이 터집니다. 은혜와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비로소 열린 마음이 되는 겁니다. 말씀에 마음이 열리지 않는데 기도가 됩니까? 찬송이 됩니까? 그런데 담임사관의 전도의 호소나 신앙생활의 권면이 들릴 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그 말씀으로 가르치는 겁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나 자신이 이해가 되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가르쳐!”하시는 분 있습니까?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가르치기 위한 준비는 먼저 나에게 적용되는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치다가 아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사역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열심히 봉사하고, 가르칠 준비를 하는 겁니다.

 

기독교인이 교회에서 뭘 가르치겠습니까? 말씀 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나를 힘나게 합니다.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합니다. 말씀이 나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꾸짖습니다. 말씀이 잘못 알고 있는 나를 가르칩니다. 바로 이것이 말씀이 풍성하게 우리가운데 거하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게 하세요. 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죽이십니까? 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송장으로 만들어 버립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살인잡니다. 하나님을 외면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또 못 박은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거하여 감동되면 여기에 찬미와 감사한 마음과 신령한 노래가 나오는 겁니다. 비로소 기도가 되는 겁니다.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겁니다. 3:16의 말씀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그랬습니다.

 

내가 감동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 안에 말씀이 풍성해져야 하는 겁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신령한 노래, 감사의 마음이 나옵니까? 그것은 노래가 감사가 아닙니다. 악을 쓰는 거죠. 자기 신세 한탄하는 거죠. 거기에 무슨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까? 말씀의 은혜가 있으면 시편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시편은 찬송입니다. 찬송이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합니다. 시편의 노래는 즐거울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의 시, 고통의 시, 회개와 참회의 시, 감사와 찬양의 시, 고통 중에 감사, 괴로움 중에 감사하는 시가 나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찬송시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은 말씀을 이해하고 묵상하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찬송가를 보시면 영어로 ‘힘(HYM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복음 찬송가(GOSPEL HYMNS)’라는 말도 있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찬양으로 속성, 섭리, 사역 등을 찬양하는 내용의 노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노래도 부릅니다. 육체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는 노래도 있지만 영적인 노래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노래가 아닙니다. 중생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노래가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노래가 됩니다. 내 안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나누는 은혜의 목소리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기쁨과 은혜 충만의 노래를 어떻게 그냥 맹~하게 부를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온 맘을 다하여, 온 힘을 다하여, 정열적인 찬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말씀은 찬양을 낳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낳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는 저와 여러분의 생활에 풍성한 기쁨과 감사, 즐거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여세요. 믿음의 문을 여세요.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3. 이렇게 믿음이 충천한 사람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사는 사람은 어떤 주제의 말을 해도 꼭 예수의 말만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말을 해도 두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신앙적 주제에 맞추어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영적 우월이나, 신앙적 우월을 설명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말을 하는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산방법, 예수님의 말씀에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의 일, 직업적인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동을 말합니다. 말씀이 우리가운데 거하지 않는 사람은 주의 일이 부정적인 의미로 ‘노동’이 됩니다. 그래서 이익이 되지 않거나 돈벌이가 되지 않거나, 어떤 명예나 칭찬이 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소위 은혜 없는 사람입니다.

 

17절의 말씀을 보세요.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언행(言行)은 주의 이름으로 실행되어야 합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그러나 정작 일은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편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이 살아서 그 마음에 거주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행하는 믿음입니다.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본을 보이는 믿음입니다. 시키는 믿음에서 자원하는 믿음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말이나 일이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중보하여 내 삶을 주님께 아룁니다. 하나님은 그 중보를 받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그것이 신앙의 복이요, 육신의 복이며, 자녀의 복이 되는 겁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말씀을 통한 역사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과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이 전도합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이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해 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의 말씀이 살아있게 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여러분 속에서 운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루에, 아니 한 주에 한 말씀이라도 되새기세요. 그 말씀이 나를 조종하도록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의 성도로 충만한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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