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말씀의 힘(2016.09.11)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6-09-12 12:43 조회수 2884


설교제목 : “말씀의 힘”
성경본문 :  사도행전 19장 17~20절
설 교 자 :   담임사관
설 교 일 :  2016. 09. 11


행 19:17-20

말씀의 힘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정의 행복과 심령의 즐거움, 교회의 부흥은 말씀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내 삶의 경험이나 생각, 판단으로 내 마음의 즐거움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판단이나 경험, 삶의 경륜들이 아주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 속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경험과 경륜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리나, 확신이 되면 곤란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진실 됨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파에 시달리고, 피곤한 사람들, 자신의 마음을 결정짓지 못하고 갈등하는 사람들, 자녀나 물질, 건강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새 생명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곳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삶의 활력을 보급 받고, 힘을 얻고, 기쁨을 얻고, 참된 교제와 사랑의 관계를 나누는 곳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생활의 근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교회가 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은혜와 사랑을 느끼려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모처럼 회개하여 바른 삶을 찾아보려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싸움이나 하고 중상 모략하는 교회도 없지가 않습니다. 이런 교회 때문에 방황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은혜 있는 교회 찾아다니다가 잘못 찾아가서 극신비적인 교회를 찾거나, 광적인 교회를 찾고, 심지어 이단 종파에 현혹되어 상처받고 타락한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는 오직 말씀으로 순종하며, 겸손하게 서로 웃으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훈련에 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삶의 지표가 되는 말씀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많은 오차가 생깁니다. 말씀이 우선 되어야하는데,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우선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싸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아멘으로 화답하며, 그 말씀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아멘 했습니다만, 자신의 육체적인 이익과 손실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상처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익만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어쩌면 손해가 더 많은 곳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손해를 본다는 것이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손해라면 손해입니까? 아닙니다. 이익입니다. 아니, 이익이 아니라 그 값을 치른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손해보는 것 같지만 그 손해가 내 마음을 후련하게 하고, 오히려 평안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고, 재도전과 충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이고, 이것이 겸손입니다. 이것이 희생이며 봉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은혜와 기쁨의 자본이 바로 말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증거하는 에베소 교회를 보세요. 에베소는 아시아에서 상당히 알려진 도시였습니다. 거기에는 세계의 불가사의의 다이아니 여신, 즉 달의 여신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충성된 성도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는동안 물질적으로, 신앙적으로 100% 후원자였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에 이렇게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신앙인이 있었는가하면, 세례요한의 인도를 받았던 에베소는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체험이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적 경험, 간증, 고백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리고 그 모이는 숫자는 약 12명 정도라고 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런데 에베소 교회에 큰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11-12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하였습니다. 원래 에베소 교회는 “성령이 있음도 들어 보지 못한” 은혜가 없는 냉랭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집회를 열었는데 인원이 12정도였습니다. 12명이 집회에서 은혜 받고 성령 충만해지자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적은 무리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능력을 경험한 성도가 있는 교회의 힘은 다릅니다. 특히 말씀에 바탕을 두고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로 가득한 교회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과 부흥과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게 해 주셨습니다. 바울의 손수건만 만져도 병든 자가 났고 악귀가 떠났습니다.

 

마술쟁이가 흉내를 내려 했습니다. 제사장 스게와 일곱 아들이 흉내를 내다가 큰 봉변만 당하고 벗은 몸으로 달아났습니다. 교회 안에도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적 경험을 하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몸에 베이는 순종으로 훈련되고, 신앙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흉내내는 사람으로 살아 온 겁니다. 물론 그 흉내가 오래가면 훈련의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흉내는 어디까지나 흉내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따라쟁이 입니까? 아니면 진정한 순종의 신앙인 입니까?

 

에베소 교회는 큰 권능을 행하는 교회,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 하는 사람들로 바꾸어지는 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교회도 은혜 있는 교회,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가 돼야합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좋은 인상의 사람들이 돼야합니다. 우리 일신성도 모두가 신유의 은사를 받고 귀신을 쫓아내는 위력적인 역사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권능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권능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하였습니다. 권능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전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또 전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권능의 사람들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2. 에베소 교회는 힘이 있어 흥왕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강력한 힘있는 교회가 되였다는 말씀입니다. 20절에 “이와 같이 주의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 하여 세력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된 성경에는 말씀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직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은 줄기차게 퍼져 나갔고, 그 말씀은 점점 더 세력을 떨쳤다."라는 말씀이 되는 겁니다. 주의 말씀이 없으면 신앙인은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세워지지 않으면 그 교회가 어떤 교회라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되는데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20절에 “이와 같이”라고 문장이 시작 됩니다. "이와 같이"는 앞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첫째,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꿇어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셋째는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은50,000의 가치가 되는 마술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불살라 버렸습니다. 미약했던 에베소 교회가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더니 강력하고 힘있는 교회가 됐습니다. 흥왕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3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였고 두란노 서원에서는 날마다 설교하여 2년 동안을 계속하였더니 많은 보수주의 신자 유대인과 지성인 헬라인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게 되는 힘있는 교회가 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힘입니다. 그리고 전도가 폭발하듯 에베소 전역을 온통 예수 그리스도로 물들게 해 버렸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바꾸어집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실패한 사람은 성공으로, 병든 자는 건강으로, 약자는 강자로, 지옥 갈 사람을 천국으로, 마귀 손에 있던 자가 성령께서 인도하심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훌륭한 사람을 사귀면 언젠가는 덕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잘 믿으면 큰 덕을 보게 됩니다. 부산가는 사람이 목포행 열차를 타고는 제 아무리 선행을 하고 봉사를 다 해도 부산에는 못 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을 천국백성 만드는 것은 하나님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말씀 전하는 열의는 대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보수주의자들, 지성인들이 몰려들어 초대교회의 모 교회중의 한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에베소 교회와 같은 힘이 있고 왕성한 교회가 되게 열심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세우는 교회, 말씀을 세우는 교회, 말씀대로 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사라지고 개인의 견해나 주장으로는 교회가 바로 설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생각과 마음, 그 말씀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의 말씀으로 서고, 주의 말씀으로 그 세력이 점점 더 확장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주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 가정과 자녀들이 말씀으로 강건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3. 에베소 교회는 큰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17절에 “에베소에 거하는 사람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에는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찬양의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마술 책을 불사르는 불길 앞에서 성령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체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전에 없었고 후에도 없었을 큰 기쁨이 충만하였을 것입니다.

 

21절 이하를 보면 바울을 반대하는 큰 대중 데모가 벌어졌습니다. 예수 잘 믿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잡혀 곤욕을 치르기는 하였습니다만 오히려 이 모임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만 더 드높아지고 전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에베소 교회는 큰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이후부터 사도 바울은 더 신나는 선교여행을 계속하며 훌륭한 거룩한 생애를 수놓게 되었습니다.

 

드로아에서는 에베소 교회에서의 큰 기쁨을 얼마나 감동적으로 설교하였기에 밤중까지 진행되었고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 창에 걸터앉아 졸며 듣다가 떨어져 죽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즉시 바울이 내려가 기도하였더니 되살아났습니다. 이 사건이 기쁨과 은혜가 더 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집회는 밤을 꼬박 새우는 철야집회가 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 큰 기쁨이 충만하여 이 세상 삶을 끝내는 날까지 큰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에베소 교회도 계속 큰 기쁨이 충만한 교회로 부흥 성장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소유한 기쁨은 성령 충만 에서 오는 기쁨과, 회개한 사람의 희열, 하나님 말씀에서 온 큰 기쁨 충만 이었습니다.

 

바울이 진리를 이렇게 깨닫고 살전5:16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모진 고통 중에서 마지막 말씀이 슬픈 비명이 아니라 “다 이루었다”하시며 인류구원 성취를 크게 외치시면서 운명하셨고 그 선언의 응답으로 3일 만에 부활 하시여 모든 예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큰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큰 기쁨의 종교입니다. 우리 교회를 드나드는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에베소 교회처럼 말씀대로 순종하는 교회,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힘이 있어 흥왕 하는 교회, 큰 기쁨의 교회가 되여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0)
댓글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