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오직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2016. 3. 6)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6-03-11 08:24 조회수 2752


설교제목 : “오직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성경본문 :  로마서 4장 1~9절
설 교 자 :   담임사관
설 교 일 :  2016. 03. 06


롬4:1-9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주의 일을 하는 겁니다. 목회만 주의 일이 아닙니다. 부서에서 활동하는 것, 주방에서 봉사는 것, 영문 환경을 위하여 청소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와 내 신앙의 표현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들이 주의 일입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가 주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오늘 찬양대가 죽을 쒔습니다. 그런데 지휘자에게 찬양대원들에게 '오늘 찬양이 별로야' 그러면 정말 민망하기가 그지없을 겁니다. 담임사관이 설교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끝나고 나가면서 '사관님 오늘 설교가 좀 그랬습니다'라고 하시면 전 정말 죽을 지경이었을 겁니다. 예배 끝나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주방 봉사하시는 분들에게 '오늘 반찬이 왜이래?' 하신다거나, '오늘 영 밥맛이 없어'하시면 주방 봉사하시는 분들은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으실 겁니다.

 

모든 주의 일이 그렇습니다. 따지고 들면 한정이 없습니다. 이유를 대면 끝도 없습니다. 게다가 수고비는 쥐꼬리만큼 주고 원하는 봉사는 황소가 일하듯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도 무슨 죄인처럼, 그것이 주의 일이기 때문에 다 감당합니다. 고맙다고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도 주의 일입니다. 그런데 주의 일을 어떤 대가 때문에 한다면 그것처럼 힘든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주의 일도 아니고, 주의 구원도 아닙니다. 하나님조차도 원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대가는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수고하는 것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대가를 받는다면 일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봉사하는 것이 옳죠. 신앙인이 사람에게 인정 받고, 대가를 원하는 것은 주의 일이 아닙니다. 자랑하고, 대가를 원하고, 보상을 원하는 것은 주의 일이 아닙니다. 신앙인이 원하는 주의 일은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가운데서 진행되어야 그것이 주의 일이고, 신앙고백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그것을 주의 은혜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보상받을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인정받을 수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삶의 행위로 의롭다고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일을 한 대가로 보수를 요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믿음을 고백하는 것 외에 그 어느 보수도 요구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신앙도 아니고, 은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보상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대가를 요구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시지 않는 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주의 은혜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고, 자기 자랑에 침이 말라 가련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겁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가장 보람되고,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 뭐 있습니까? 예수 잘 믿고 죽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대가를 치러 주시고, 하나님이 보상해 줄 겁니다. 우리의 고백은 그저 '하나님, 내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복이 되고, 그것이 은혜가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1. 내가 내 자랑하며 살고 있는 이 현실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참 희한합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에서 자랑하는 자는 이미 그 상을 이 땅에서 다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 더 이상 나에게 믿음의 보상을 없는 걸까요? 바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주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없을 거 같아도 하나님은 그래도 나에게 믿음의 기회를 늘 주시고 계십니다.

 

2절의 말씀을 보세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단순 무식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친척, 고향, 아비 집을 떠나 어느 누구도 보장하지 않는 길을 떠났습니다. 게다가 100살에 낳은 아들을 불에 태워 바치라고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아들을 데리고 주님께 드리기 위하여 길을 떠납니다.

 

사람들은 이런 행동 자체에 의미를 둡니다. 대단한 위인입니다. 정말 본받고 싶은 신앙적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세요. 그런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도 자랑할 것이 못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모든 일의 결과를 보상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신앙은 결과의 보상이 아닙니다. 믿음 자체의 보상입니다. 5절의 말씀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일의 결과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원하여 주시는 선물입니다. 생명이나 죄와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 은혜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믿는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보편적인 은혜는 내가 숨을 쉬고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공기, 햇빛과 물입니다. 만약에 믿는 사람에게 만 공기를 주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도 안 해도 되잖아요? 저와 여러분은 은혜로 사는 겁니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지금 이 내 삶은 벌써 버림받는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4절의 말씀을 보시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수라는 말을 개역 한글 성경은 빚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보수'라고 표현을 합니다. 보수라는 말은 '빚을 진 어떤 것', '부과금', 은유적으로는 '위반한 죄'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자체를 주의 은혜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지금 이 현실이 내 신앙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이 주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 현장입니다. 더 겸손하십시오. 더 은혜롭게 섬기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내가 이 작고, 조그마한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큰 존재가 되질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의 모든 스토리는 '벌레들의 이야기'에 불과 합니다. 벌레들이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개미들의 모습, 조그마한 풀벌레들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눈에는 작고 작은 벌레들의 일생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벌레들이 인간이라는 종으로 분류되어 살고 있는 겁니다. 서로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그래서 조금 나아지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짐승의 말에 밟히면 한 순간에 끝나는 인생인데도 말이죠. 하루살이는 평생을 사는 것이 하루입니다. 그 하루를 살려고 번잡하게 날아다니는 겁니다.

 

4절, 5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받는 품삯을 은혜로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 믿음이 의로움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 안에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일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일한 만큼 품삯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지 않고 품삯을 받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로 사상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수고하고 애를 쓴 만큼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타 종교적 신앙관입니다. 그러나 수고나 노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 사상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내가 죄인인 것을 분명히 알고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면 그것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없이 어떻게 신앙인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6절의 말씀에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작은 믿음이 자신을 살립니다. 그것이 비록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나를 구원하고,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3. 어느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은혜입니다. 7-9절의 말씀을 보세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세상에 그 어떤 구원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선물, 은혜입니다.

 

내가 한 일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내 잘못을 덮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그 자체가 복이고 은혜입니다. 더 이상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지금 이 은혜도 벅차고 감격이 되는데, 누구에게 갑질하고, 누구에게 명령하고, 누구에게 호통치고 이것은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합니다. 우리는 다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똑같이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은혜의 사람들이 대가를 바라고, 품삯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섬기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 오늘을 사는 나 자신이 문제가 되고 고통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삶의 결과와는 다릅니다. 죄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밟고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삶이나, 성결의 삶이 아닙니다.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내 발 밑에서 고통당하고 한숨짓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함께 살아가는 겁니다. 주 안에서 서로 행복을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 은혜의 나눔은 그만큼 나 자신이 믿음으로 성숙해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난 오늘도 이렇게 서있을 수 없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큰 공을 세우고, 큰 믿음으로 봉사를 해도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갚기에는 어림도 없는 하나의 행동에 불과 합니다. 그저 갚지 못하는 은혜이지만 그래도 예수께 속하여 숨쉬며 살아가는 순례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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