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교회의 흥망성쇠(2016. 1. 24)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6-01-31 18:50 조회수 2642


설교제목 : “교회의 흥망성쇠”
성경본문 : 마가복음 8장 34~38절
설 교 자 :   담임사관
설 교 일 :  2016. 01. 24


막8:34-38

교회의 흥망성쇠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는 교회의 간판만 걸어 놓아도 교인들이 모이는 나라로 통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의 성장세력이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성장 형태는 극도의 자기 쾌락을 추구해 왔습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선교를 향한 비전이 찬양과 방언을 통한 자기 쾌락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자 훈련한다고 했더니 결국 성경의 자시 지식의 욕구 충족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더욱 확장되기보다는 협착되어 펴질 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오히려 무서워합니다. 목숨을 버리며 죽기를 각오하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전도하며 복음을 외치는 담대함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장하기가 참 어렵다는 말이 요즘 목회자 사이, 성도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오고 갑니다.

 

그래서 한 때 교회들마다 유행했던 전도 프로그램이 “총동원 주일”입니다. 만 명 모이기 총동원 주일, 천명 모이기, 오백 명 모이기 등등 교회마다 총동원 주일 해보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엄청만 재정을 투자합니다. 많은 사은품, 기념품 등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수천 명, 수백 명이 모였지만 그 다음 주에는 정말 한 사람도 남는 사람이 없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교회는 다시 휑하니 비고, 그 뒤에 오는 공허함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리고 행사에 사용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특별헌금을 하고, 그로 인하여 비판의 소리가 높습니다.

 

이제 교인들도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총동원 주일을 하면 전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우리 교회에 총동원 주일하는데 한 번만 나와 주세요. 내 얼굴을 봐서라도, 내 체면을 봐서라도 한 번만 나와 주세요’합니다. ‘우리교회 이번 주에 총동원 주일 하는 데 오시면 큰 상품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 그 상품 때문에 참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얼마나 총동원하는 교회가 많은지 일정을 잘 짜두면 한 살림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도 시상품만 받고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겁니다. 교회도 눈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총동원 주일을 해도 상품을 주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전도 해 오라는 겁니다.

 

그런데 한 수 위의 교인들은 이제 다른 교회 나가는 친구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소위 품앗이를 하는 겁니다. 이번에 우리교회에 총동원 주일하면 당신이 우리교회에 한 번 나오고, 다음에 당신 교회에 총동원 주일 하면 내가 그 교회에 나가 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특정한 절기가 되면 오히려 각 교회마다 출석인원이 줄어듭니다. 왜냐하면 서로 품앗이를 위하여 다른 교회에 참석해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의 이름이 최소한 시내 몇 교회에 여러 번 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시대의 교회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예수를 믿어 부흥하는 것보다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옮겨 다니기 때문에 부흥을 하는 소위 수평이동 교회성장의 형태가 나타나는 겁니다. 힘들면 편안한 교회 찾아가는 겁니다. 부담이 들면 부담이 없는 교회 찾아 가는 겁니다. 소위 사명감의 결여, 구원관의 부족으로 생기는 한국교회의 특수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지속되면 한국교회의 부흥은 어렵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개척하면 쉽게 개척을 못 면합니다. 과거에는 교회 개척을 하면 개척교회를 위한 사명감으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지금은 개척교회 부담스럽습니다. 헌금의 부담 있습니다. 교회 건축의 부담이 있습니다.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시켜야 할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큰 교회 나갑니다. 헌금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전도해야 할 필연성 가질 필요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척 교회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 닫는 교회가 생깁니다. 교회에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망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교회는 망하지 않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도 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향한 십자가의 사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전도해야 하고, 왜 교회를 부흥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의식이 점점 희박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전도하지 않고 나이 먹습니다. 늙어갑니다. 그러면 자꾸 탄력을 잃어버립니다. 흥밋거리가 사라집니다. 예배의 탄력이 없습니다. 열정도 없습니다. 활동력도 떨어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제 우리 이후 세대에 물려 줄 수 있는 건 낡아 가는 교회를 정비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장례를 부탁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망하는 교회를 다시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관건은 1. 예수의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34절에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은 곧 사명입니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중요한 직분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나 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기를 바라고 피해 버리면 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고통이 임하는 겁니다. 나 하나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한다면, 나도 그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피함으로 열 명의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입혔다면, 앞으로 나는 10명에게 10번의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일은 나눠지는 겁니다. 한 번은 힘이 들겠지만 그 어려움은 두 번 다시 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집니다. 그 십자가는 10명이 져야만 감당할 수 있는 무게입니다. 11명이 진다면 그만큼 부담은 줄어 들 수 있는 겁니다. 부담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확실히 부담은 줄어듭니다. 15명이 든다면 키가 작거나 연약한 한 사람 정도는 그 힘을 줄여도 관계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모자를 때가 문제입니다. 10명이 져야 할 십자가를 9명의 사람이 지면 문제가 됩니다. 더욱 7명이 십자가를 진다면 그것은 고통입니다. 거의 기절 직전이 되고 말겠죠? 만약 5명이 진다고 해 보세요. 모두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포기한다는 것은 곧 망하는 겁니다. 실패하는 겁니다.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5사람은 자신이 힘들 들이지 않고 십자가를 멜 수 있는 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 교회의 군우 여러분 우리 함께 연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울 수 있는 힘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같이 섬으로 인하여 주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들이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정말 감동적인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2.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겁니다. 망하려면 도망하면 됩니다. 망하려면 자꾸 빼면 됩니다. 망하려면 일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래서 -(빼기, 마이너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더하면 풍성해 집니다. 더하면 부흥합니다. 더하면 튼튼해집니다. 그래서 +(더하기, 플러스)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8:35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참된 살길은 죽기를 각오하는 겁니다. 안 되는 것은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것은 내가 채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은 내가 그만큼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38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주님이 필요하다고 하신 그때에 나는 부족하다고 물러섰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나의 필요를 요구하시는데 나는 힘이 없고 연약하다고 물러서서 주님이 쓰러지셨습니다. 주님은 빨리 나에게로 다가와 나를 도우라고 하는데, 거리가 먼 느낌이 듭니다. 진정 길은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마음이 멀리 서 있었습니다.

 

나 자신을 부끄러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힘을 좀 보태 줄 수 있는 분 없습니까? 좀 모자라지만 채워 주실 수 있는 분 없으십니까? 지금까지는 마음이 닫혀서 서먹서먹했지만 이제 그 마음을 열고 주님을 향하여, 몸 된 교회를 향하여 다가서실 분계시지 않습니까? 교회가 되는 비결입니다. 이 비결을 알고 있음에도 성장을 위하여 적용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3.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던지 복음을 전하는 것, 즉 전도하는 겁니다. 복음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없으면 찾아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사하는 가게를 보세요. 요즘엔 메스컴의 광고로 매출이 향상되는 경우는 참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품을 인식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판촉, 홍보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 자신의 이미지를 걸고 많은 지원과 봉사를 시행합니다. 즉 기업의 사회 환원의 의미를 찾아 가는 겁니다. 교회는 외쳐지지 않으면 절대로 듣고, 보고, 찾아오는 사람 없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 구세군 교회의 믿음과 생활의 즐거움을 말하지 않으면 우리 교회에 찾아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얼마나 좋은 교회인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교회인지를 말하지 않으면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내가 전하고 싶으면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우리 교회가 망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도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내가 얼마나 열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부흥하던지 망하던지 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담임사관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겁니다. 제가 아무리 ‘합시다’라고 해도 이것이 구호가 되면 결코 교회는 부흥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지체인 저와 여러분이 하겠다고 하면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지 않으면 교회도 망합니다. 우리 후대에 망한 교회라고, 안 되는 교회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교회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땀과 피로 맺어진 교회이기에 소중하고, 더욱 열심을 내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교회, 부흥하는 교회, 탄력있는 교회, 또 찾아오고 싶은 교회로 만들어 물려 줄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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