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원이 중심이 되는 삶(2016 1.10)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6-01-15 18:04 조회수 3183


설교제목 : “구원이 중심이 되는 삶”
성경본문 : 히브리서 2장 1-4절
설 교 자 :   담임사관
설 교 일 :  2016. 01. 10


히2:1-4

구원이 중심이 되는 삶

 

 

구원의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습니까? '삶'은 생물체의 살아 있음을 의미 합니다. 살아가는 일을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곧 삶이 되는 겁니다. 삶은 영어로 living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살아 있는', '생명력이 있는'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또 삶은 life라는 말로도 씁니다. '생명', '생명 현상'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인생, 삶은 생명이 있거나 살아서 활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활동하지 못하고, 생명의 현상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것은 삶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산다고 합니다. 즉, 구원의 삶을 삽니다. 그런데 한 번도 구원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뜻이나, 개념, 정의를 내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삶, 구원이 중심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어느 누구도 '그렇다'라고 고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겁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삶에 대하여, 특별히 구원이 내 삶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충분히 숙고해 보셨습니까?

 

깊은 묵상과 말씀의 고백이 없이는 구원이 내 삶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을 낼 수 없습니다. 구원의 삶이 내 인생의 중심이 되게 하기 위해선 적어도 거기에 대한 이런 저런 개념이나 성서적 고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를 정하고, 표어를 정해서 그것이 한 해 동안 내 신앙생활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설정해 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 한해 뭐하지?'하고 고민만 하다가 끝나버립니다.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우리의 인생에 분명한 신앙적 핵심이 되는 삶의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교회의 출석이나, 신앙생활들이 무의미 없는 반복이 되어 버립니다. 그 반복에 회의를 느껴 교회를 이탈하고, 신앙생활을 포기 하게 되는 소위 '가나안 성도'가 되어 버립니다. 가나안 성도가 뭔 줄 아시죠? 가나안을 목표로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교회에 안나가는 성도를 의미 합니다. '교회에 안나가 성도'를 거꾸로 하여 '가나안 성도'라고 합니다.

 

교회에 대한 회의, 거부감으로 교회 출석을 거부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신앙에 대한 특별한 의식도 없습니다. 그냥 교회를 비판하고 세상에서 머물러 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자신의 구원의 삶을 한 번 심도 있게 고민하고 고백해 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내 삶의 중심에 예수의 구원이 설정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겁니다. 예수의 구원이 확실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의 신앙생활이나, 교회 생활에 자꾸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그 의문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 예수 구원이 확실히 중임이 되어 있었습니까? 그 삶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이끌었습니까? 또 한 가지는 그 예수 중심의 삶이 성서적이며 고백적이었습니까? 아니면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과 고백으로 살아오셨습니까? 지금 우리 신앙고백의 나침반이 예수 중심의 지도에 세워져 있지 않고 자의적이거나 주관적 삶의 지도 위에 세워져 있으면 정말 많은 오차가 일어납니다.

 

군대에 갔다 오신 분들은 잘 아십니다. 군대에서 독도법, 즉 지도를 보는 법을 배웁니다. 그런데 우리 고참 중에 독도법을 잘 못 배운 고참이 있으면 그 근방 온 산을 다 헤매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지도를 어떻게 놓아야 하고, 나침반을 어떻게 놓아야 하고, 산이나 도로의 형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에도 독도법, 인생의 여정을 잘 파악하고 읽을 수 있는 법이 필요 한 겁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의 삶을 현세에서 천국까지 분명하게 인도하는 지도입니다. 구세군 교리 제 1조에 "우리는 신구약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졌으면 성서만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의 표준임을 믿는다."라는 확실한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신앙과 실천의 이정표가 성경입니다. 온전한 구원이 중심이 되어 사는 분명한 방법, 지도가 성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제외하고 내 주장과 계획,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삶을 하나님께 놓아 버리면 하나님이 나의 인도에 끌려 오실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1. 구원이 우리의 삶에 중심이 되려면 복음에 간절해야 합니다. 복음에 목이 마르지 않은 사람은 그 삶을 신앙적으로 잘 유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복음적 가치나 기준이 성서적이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줄을 긋기 시작하고, 자기 멋대로 아무데나 잣대를 들이 댑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 틀리다를 결정합니다. 교회와 신앙인들 사이에 얼마나 큰 혼란이 오겠습니까? 이건 교회와 신앙인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생 여정에 얼마나 많은 혼란과 갈등이 오겠습니까?

 

히2:1의 말씀을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유념해야 합니다. 개혁 한글성경에는 삼가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에는 '굳게 간직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념하다'(프로세코)라는 말은 '-어디에 두다', '전념하다', '관심을 가지다'라는 뜻으로도 사용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들은 것에 유의를 하라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최종적인 계신인 복음을 의미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장에서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그런 그리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유념하라는 겁니다. 성서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를 내 주관이나 내 자의적인 고백으로 엉뚱하게 흘러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에 더 간절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에 간절한 삶은 성서로 돌아가는 겁니다. 성경이 구원을 어떻게 말하고, 성경이 내 삶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내 삶을 어떻게 주관하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런 고백, 이런 묵상, 부단한 간절함이 없으면 결국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복음과 말씀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자아가 나를 다스리게 됩니다. 결국 내 모든 것을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한다는데 누가 뭐랍니까? 그러니까 교회도 내 맘대로이고, 사람도 내 맘대로이고, 믿음도 내 맘대로입니다. 싫으면 그만입니다. 내 입맛에 당기는 다른 교회 찾아서 나서면 됩니다. 이건 복음의 간절함이 아닙니다. 이건 내 신앙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2. 복음에 확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구원의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복음의 확신이 분명하게 서지 못하면 소위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직분이나, 사역이나 섬김이 어렵게 됩니다. 구원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사람은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요, 이 은혜를 갚을 길은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이다. 이 논증적 확신이 무너지면 내 복음의 삶도 사라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충성하는 것도 사라져 버립니다. 그럼 나는 신앙인이라는 빈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껍데기뿐인 신앙으로 내가 교회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라져버린 충성의 고백, 섬김의 고백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이건 얼마를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 신앙의 삶, 즉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구분해야 할 시점인 겁니다.

 

2-3절의 말씀을 보세요.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정한 보응을 받았다고 합니다. 복음에 확신이 없고, 구원의 삶이 유지 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정한 보응이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곧 생명의 유지인데,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에 문제가 생기면 병도오고 역경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역경이나 병을 극복하는 것은 내 생명을 건강하게 원위치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 생명을 건강하게 되돌려 놓은 작업이 복음에 확을을 가지는 겁니다. 소위 신앙의 확신으로 사는 겁니다. 자신이 삶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에 출석하여 사역하는 것에 대한 정체성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어찌 구원의 확신이며, 복음의 확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런 삶은 자신의 중심을 세울 수 있는 지지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하고 확실하게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내 삶을 단단하게 합니다. 복음에 확신이 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내 신앙과 교회의 사역과 섬김에 열심을 다할 수 있는 겁니다. 열심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생명의 제사입니다. 예배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섬김과 사역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남이 하는 것도 빼앗다 시피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삶입니다. 복음이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으로 생명의 면류관 이 땅에서의 화평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3. 구원이 중심이 되는 삶에는 열매 맺는 삶이 필요 합니다. 신앙생활하면 다양한 능력, 재능, 달란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언제 배워서, 언제 써먹습니까? 우리 동부인이 목회사역을 하면서 뭔가를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동부인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뭔가를 시도해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내가 주의 은혜를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주의 사랑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주의 사역에 품격을 높이고 싶습니다. 그냥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목양사관은 피아노도 칠줄 모릅니다. 도솔미솔만 칩니다. 그래도 그것으로 봉사하려고 피아노에 앞에 앉았습니다. 그것이 발전되는 겁니다. 우리는 악기를 불 줄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하여 주님의 사역이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솔까지만 소리가 나도 그것 가지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이 발전되는 겁니다.

 

목회하면서 개척했습니다.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전도지를 들고 온 거리를 다녔습니다.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나중에 내가 목회하는 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정말 잘해 줘야지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게 발전되는 겁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죠? 누군가 뛰어난 재능이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겠다고 덤벼들면 그 교회는 정말 땡잡은 겁니다.

 

누군가 뛰어난 열정과 헌신적인 마음 하나만 있어 사역하는 교회가 있다면 정말 그 교회는 하나님이 은혜 주신 교회입니다. 그것이 삶에 나타나는 겁니다. 여러분의 섬김이 하늘을 드러내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은 봉사와 사역이 하늘나라를 보여 주는 겁니다. 2:4절의 말씀에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값진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서 주의 구원을 알릴 수 있는 수많은 도구들을 받았습니다. 왜 감춰두고 계세요? 왜 묵혀두고 계세요. 왜 이 세상의 저렴한 가치로 팔려고 하세요. 하나님 앞에 드러내세요. 교회에 드러내세요. 하나님은 놀라운 가격으로 대신해 주실 겁니다. 그리스어 '달란트'가 영어의 '탤런트'가 된 것은 아시죠? 한달란트는 약 34킬로 그램입니다. 화폐의 가치로 한 달란트면 순 금 34킬로가 되는거죠. 오늘날 금값으로만 그 가격이 6,800,000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1,200만 달러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여러분의 재능의 가치로 얼마나 받으세요. 하나님께 한 달란트만 받아도 한국 화폐로 132억입니다. 그런 가지를 가지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사역하세요. 하나님이 높이시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구원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중심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가 은혜받고, 그러다가 하늘문이 열리고 주의 구원과 복의 은혜가 항상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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