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까?(12.29)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12-29 23:55 조회수 2816


설교제목 :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까?”
성경본문 :  누가복음 24장 13~34절
설 교 자 :   담임사관
설 교 일 :  2015. 12. 29


눅24:13-34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마다 자신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하나 둘 씩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 목거리를 목에 걸고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끝마다 '주여'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세군 교회의 성도들처럼 특별한 복장을 하고 다니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자신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 특징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정적인 기도를 통하여 그 신앙을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많이 읽은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찬양을 통하여 그 신앙을 표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전도, 봉사 생활로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눈에 척 봐도 신앙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상징이나 특징들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사관님, 뭐 꼭 특별하게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그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하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한국의 유명하신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연(內燃)이 외연(外煙)’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안에서 태우면 밖에서 연기 나게 되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트림을 하든지, 하품을 하면 그 사람이 뭘 먹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뭔가가 있기 때문에 밖으로 표출되는 겁니다. 경상도에 사시는 분들이 서울에 가서 표준말을 씁니다. 서울말하면 교양 있는 것 같고, 뭔가 세련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서울말을 연습했습니다. 서울에 갔습니다. 누가 봐도 정말 완벽한 서울 사람 같았습니다. 어느 날 너무도 배가 고팠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반찬에 밥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면서 하는 말 “아, 작 무~다‘하는 경상도 말이 나옵니다. 무의식중에는 자신의 본마음이 들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는 것이 지금 내가 가진 내면의 상황입니다. 하물며 신앙의 모습들은 그 사람이 어떤 신앙의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신앙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신앙의 상황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그 사람의 성격, 기질, 신앙적 성향, 교육적 성향, 환경적 성향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뭔가가 그 사람의 내면에서 불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외면으로 연기 나듯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그 증거가 있습니다. 참된 신앙과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있는 척하고, 표현을 하지만 하는 것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내면에 끓은 열정과 생활을 보면 많이 기도하지 않아도, 많이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 활동과 생활이 열정적인 신앙인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예수와 만난 사람, 즉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들, 진정한 신앙인의 특징들을 몇 가지고 나타납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들을 한 번 둘러보시죠. 여러분은 과연 어떤 신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면적입니까? 아니면 외적입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까?

 

1.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예수의 부활하심을 알지 못하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18절에 보면 그 한 사람이 글로바 즉 ,클레오파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19:25의 마리아의 남편이거나 시몬의 아버지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에 이름이 쉽게 나온 것을 보면 아마도 누가복음을 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아마도 그의 아내가 아니었을까하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이 목적하는 곳 엠마오라는 곳까지 약 11킬로미터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결코 짧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그 거리를 실망과 좌절로 갑니다. 예수의 부활과 생명이 그들의 마음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좋지 않은 마음과 축 처진 몸을 가지고 걸어가는 그 두 제자에게 함께 하셨습니다. 너무도 실망과 좌절을 해서 그런지 16절에 그들의 눈이 가리워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렇게 낙심하여 돌아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글로바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그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예수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19절에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라고 말을 합니다. 눈이 가려진 사람은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되심과 나의 구원자 되심, 책망하시고, 위로하시는 주님이심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예수를 자신이 가르치려고 하는 무례를 범하게 됩니다.

 

감히 예수님을 자신의 생각과 편견, 오만과 불손으로 예수를 눌러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환상이 아닙니다. 훌륭한 선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의 인생과 영혼을 구원하셨고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몇몇 여인들이 무덤에 갔다가 예수를 찾지 못하고 천사의 환상만을 봤다는 말을 합니다.

 

27절에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저희들 마음에 닿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적한 곳에 왔습니다.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강권하여 자신의 숙소로 모셔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잡수시고 그들을 위하여 축복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 졌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서로 질문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첫 증거입니다. 중심이 불타올랐습니다. 잠자던 저들의 마음속에 진리와 의, 행복과 감사, 감격과 은혜가 복 바쳐 올랐습니다. 그 감격은 도저히 앉아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 뜨거움과 그 감격은 그냥 서로 바라보고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작용이 아닙니다. 인위적인 작용도 아닙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는데 그 중심이 뜨거워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뜨거워지시기 바랍니다. 말할 수 없는 감격과 은혜, 주체할 수 없는 간절함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2.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인들의 특징은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대신하여 성령의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갑자기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 같이 저희들에게 임하더니 그들이 이전에 경험할 수 없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그 열정은 죽어도 좋다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죽으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주께서 주신 은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겁니다. 우리의 중심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여기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담대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엡6:19에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담대함은 곧 예수 믿음의 표시입니다. 그 표시는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이라면 복음 증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를 드러내야 합니다.

 

부끄러움은 성령 받지 못한 것입니다. 체면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입니다. 연약함이나 나약함은 우리 신앙의 중심이 건강하고, 담대하지 못해서 비롯된 요인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담대하게 해야 합니다. 뜨거운 기도가 내 마음을 담대하게 합니다. 말씀의 묵상이 내 마음을 담대하게 합니다. 과감한 봉사와 헌신이 나를 담대하게 합니다. 용맹스런 신앙의 용사가 되게 합니다.

 

3. 주와 동행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복과 은혜가 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더 이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천하 만물을 주관하시며 저와 여러분을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소유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그 자녀 된 값을 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준비하신 복과 은혜를 주십니다. 어깨 피고 사는 백성, 중심이 주의 은혜로 담대함으로 가득 차 있는 백성에게 뭐가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자신 있는 사람에겐 모든 것이 척척 그냥 됩니다.

 

자신 없는 사람은 되는 것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은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의 자녀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자녀가 잘 됩니다. 직장과 사업이 잘 됩니다. 문제는 두려워하기에 안 되는 겁니다. 염려하고 걱정하기에 안 되는 겁니다. 나약하기에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방법을 선택하기에 안 되는 겁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열정도 없이, 주님을 향한 수고와 헌신도 없이 거저 왔다가 거저 가는 삶은 사시지 않았습니까? 가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구역시상을 하고 한 해 동안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을 격려하면서 주님 앞에서 '내가 저렇게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주님과 동행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심령과 생활에 주님이 동행하시는 증표를 소유하세요. 기도하는 사람으로, 말씀의 사람으로, 복음 전파와 헌신의 사람으로, 그리고 복된 삶의 증거들이 여러분에게 늘 넘쳐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 한 해가 주님의 은혜의 동산에 늘 충만하고 행복한 삶이되었음을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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