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11. 15)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11-17 15:06 조회수 3065


설교제목 :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성경본문 : 시편 96장 1절 ~ 9절
설 교 자 :  담임 목사
설 교 일 :  2015. 11. 15



시96:1-9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


여러분은 교회를 가면 무엇을 먼저 봅니까? 교회의 분위기를 먼저 봅니까? 아니면 사람들을 봅니까? 대부분의 사람 사람들은 교회에 처음 나오면 느끼는 첫 인상이 교인들의 친절한 모습이나, 교회의 구성원보다는 사실 처음 예배를 참여했을 때의 분위기를 많이 봅니다. 사실 교회의 사람들과 교제를 갖고, 친교를 하는 것은 교회의 분위기에 적응한 후에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설교가 좋아도, 교회의 예배 분위기가 썰렁하면 예배에 참여하기가 힘듭니다. 예배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넘치는데, 예배를 이끄는 사회자나, 기도자, 설교자, 기타 순서자들이 지루하게 시간을 끌면 그것도 참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배는 두 가지가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면으로, 예배의 흐름, 분위기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신앙적 상태입니다. 즉 예배를 통하여 영향을 받게 되는 내적인 변화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 주, 그래서 수십 년을 교회에 출석했습니다만, 특별한 신앙적 경험이 없이 지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주일 대예배를 통하여 은혜 받고, 감동 받은 분들이 있으십니까?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여 주의 구원을 발견하고, 헌신하겠다는 강렬한 은혜를 경험한 적 있으십니까?

 

그만큼 교회의 정기 예배를 통하여 감동 받고, 중심이 뜨거워지고, 삶의 변화를 이루고, 재헌신이 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중요합니다. 내가 알던지 모르던지 내 삶이 예배를 통하여 성숙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어떤 계기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느덧 나는 그만큼 신앙적 성숙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닙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학교 수업의 과정을 통하여 큰 비전과 인격 형성의 목적을 깨닫고 발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루에 콩나물이 자라듯이 그런 과정을 지내오는 통로 속에서 그만큼 내 자신이 성숙하고, 신앙적이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희생의 삶의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표현하는 양식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儀式)입니다. 기독교인에 있어서 예배의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며,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통하여 신자들은 삶의 근거와 생활의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삶을 지탱하며 영위해 나가는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내 삶의 고백이고, 현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형식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예배는 우리에게 너무 타성화된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한 생각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될 때가 너무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 예배는 이제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가 형식적 제의로 그치지 않고 생활의 고백과 나눔이 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더욱더 그렇습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와 생활방식에 푹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신앙의 공동체적 표현인 예배를 통하여 각성케 하고 늘 새로워지는 삶을 살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예배의 본질이 뭡니까?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신자의 자발적인 행위이다. 오늘 본문 시96:7 ,8을 보면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말씀하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내가 그 말씀대로, 그렇게 해야겠다”는 다짐과 행동에 대한 강력한 촉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대화를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것을 생각합니다만, 바로 예배가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대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맺어 대화할 수 있게 허락하신 통로가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심오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경건한 행위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예배를 향하는 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앎과 이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명백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경험입니다. 이것이 성령에 감동을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예배의 본질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경배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며 찬양을 드리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한다는 사실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존경과 사랑과 영광을 돌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깊은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평상시에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구체적인 표현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은 부모의 생신 때나 회갑을 맞이할 때 격식을 갖추어 부모님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 격식을 갖추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한마음으로 형식을 갖추어 하나님을 축하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경배와 축하를 바탕으로 하는 예배는 신자의 성숙을 위해 큰 도움을 줍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하는 일은 우리의 더 훌륭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의 존재를 의탁하는 일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려는 움직임이며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고 우리의 영을 성령으로 새롭게 하며,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처럼 되게 하고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러 의미 있는 예배를 드릴 때 전인적인 구원과 치유와 온전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누구에 의해서 강제적이 되거나, 법이 되거나, 어떤 조직을 형성하는 틀이 되거나, 아니면 하나의 의식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의 자발적인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2. 이제 우리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와 근거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신학적 의미와 근거). 예배의 중심에는 인간의 기본 욕구가 존재해 있습니다. 단적으로 하나님, 즉 신에 대한 욕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건 인간이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존재론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린 후 북어를 소나무 위에 얹어 놓으면서 쌀을 그 나무 밑에 뿌리는 행위 속에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본원적 태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예배를 드리려면 올바른 하나님관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배에 대한 의미가 바뀐 것은 종교 개혁의 시기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예배를 예배 인도자가 신의 입장에 서서 회중을 위로하며 달래주는 희생제의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의 예배는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는 것'을 중히 여기는 것을 예배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고(계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확신케 하였고, 개신교 예배 신학의 흔들릴 수 없는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늘 예배드리는 하나님은 강제적이고 힘을 내세워 사람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귀며 친밀하게 사랑하고자 하시는 인격적인 신(personal God)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영원하시고 무한하시며 만물의 근원이신 '초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궁극적인 기쁨과 영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시고 자기를 나타내시며 사람의 마음속에 임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성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사람의 죄와 허물을 따라 심판하고 벌주는 일을 즐기시지 않고 도리어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죄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뉘우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공의와 사랑으로 인류를 다스리고 만물과 역사를 지배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중심적(Christ-centric) 신앙과 사고, 성령의 인도와 위로를 통한 동행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예배자에게 필요한 믿음의 현실적 근거는 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한 깊은 이해에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불러냄을 받은 백성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믿겠다고, 또 그분에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이 백성의 모임은 언약의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자원함으로 존재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예배자는 나름대로의 목적을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배자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목적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하는 공동체는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배드리는 공동체는 교회가 존재하는 기본 목적을 성취하려는 유기체적 공동체입니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생명체'라는 말입니다. 이 유기적 공동체가 존재하는 중요한 목적은 예배입니다. 이 예배에 말씀의 선포가 있고, 친교가 있고, 교육이 있는 것입니다. 흩어지는 교회로서 전도, 봉사, 청지기, 사회참여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즉 예배의 의미가 살아 있을 때, 교회의 의미가 살아 있을 때 교회는 부흥하는 것입니다.

 

본문 4-6절에 예배의 분명한 목적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하나님을 향한 고백과 예배는 이래야 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우상과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 주십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예배입니다.

 

이것은 시편기자처럼 확실한 신앙고백이 없이는 예배가 불가능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고, 고백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기가 곤란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곳에 참 어려운 발걸음 하셨습니다. 바쁜 일도, 급한 일도, 복잡한 마음도 많으실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내 삶에 기쁨이 되고, 변화가 있고, 삶의 성숙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변화되는 삶, 변화되는 사고, 변화되고 성숙되는 마음가짐이 살아있는 예배를 드린 결과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욕망과 바램을 충족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과 교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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