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섬김으로 주의 구원을 이루라(10. 18)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10-25 15:47 조회수 2980


설교제목 : “섬김으로 주의 구원을 이루라”
성경본문 :  빌립보서 2장 12 ~ 18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10. 18



빌2:12-18

섬김으로 주의 구원을 이루라

 

 

자선봉사단(League of Mercy)은 189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당시 캐나다 사령관인 허버트 부스가 창단집회를 인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1969년까지 호의 자선단(Good will leagu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그 이후로 중단되었다가 1980년 자선위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재개하여 활동하다가 이제 명칭을 자선 봉사단으로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약 123년의 전통을 자랑합니다.

 

자선봉사단은 구세군이 펼치는 전통적인 봉사 중에서 최고의 사랑을 표현하는 사업으로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을 이웃에게'라는 구세군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오직 봉사를 위해 조직된 단체입니다. 자선 봉사단은 연령, 무능력한 사람, 질병, 다른 환경으로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위로와 기쁨을 주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표현하므로써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여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봉사를 위해 매주, 매월 정기적으로 그들을 방문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용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에서 살지만 활동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자, 독거노인 환자, 소년소녀 가장 등 자신이 스스로 돌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일을 자선봉사단이 보살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선봉사단에서 활동합니까? 담임사관에 의해 추천된 사람으로 군복을 착용한 남, 여 구세군 병사로서 14살 이상만 되면 모든 사람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선봉사단에서 실시하는 간단한 연수 과정을 통하여 입단이 가능합니다. 자선 봉사단은 마25:40의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는 말씀을 그 표어로 삼습니다.

 

구세군 교회 안에는 특별한 영역이 있습니다. 그렇게 제한적인 특별한 사역의 영역이 바로 자선 봉사단입니다. 자선 봉사단은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과 같이 장애자, 독거노인, 환자, 소년소녀 가장 등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을 위하여 봉사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자선 봉사단원들은 특별한 사명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큰 마음을 품고 봉사에 임해야 합니다.

 

자선봉사단은 단순하게 봉사, 섬김의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주는 겁니다. 영혼 구원의 방편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은 단지 구세군인만이 해야 할 사역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웃과 함께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반드시 실행을 해야만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질이 아까워 봉사와 섬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나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참여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과 관심을 의식하고 봉사와 섬김의 사역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실 일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늘 본문을 통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보던지 그렇지 않던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섬기며 봉사하듯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선 봉사단의 활동은 자신의 업적이나 공로를 위해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대신해서 도와 드리는 겁니다. 그런 희생과 헌신의 마음이 없이는 자선 봉사단 활동은 할 수 없습니다. 구세군인들의 가질 수 있는 하나의 특권입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13절의 말씀을 보세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시고, 그 할 일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봉사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당신이 하시고자하는 그 일을 하고 싶어 죽겠다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봉사하고 섬기는 일들이 좀 힘든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 힘이 듭니다.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물질적 소비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봉사하고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십니다.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정말 주님을 위한 사역할 수 있도록 시간도 주십니다. 그 시간과 재물과 능력을 지나치게 개인을 위해서만 사용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선 봉사단은 그래서 마음과 삶과 믿음이 복합적으로 형성될 때, 신앙의 최고 점을 찍는 사랑의 실천으로 구세군 자선 봉사단의 삶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자선 봉사단은 흠이 없고 순전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뭐 저래?'하며 손가락질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사심(私心)이 가득한 봉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봉사가 아닙니다. 불평을 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것을 너무 인색해 하면 그것은 결코 봉사와 섬김의 의미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내가 하는 섬김과 봉사가 시비거리가 되고 의심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흠이 없고 순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세군 자선 봉사단이 120년 동안 해왔지만 누군가에 의해 흠이 잡히거나, 그 순수성을 의심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작은 곳에서, 음지에서 나의 손길이 아니면 전혀 회생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단이 구세군이었습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교권과 교리를 중요시하는 교단들은 인본주의다, 이단이다라고 구세군의 활동을 폄하했습니다. 약 65년의 세월을 그런 비판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역을 했습니다. 그렇게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던 교단들이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를 표방하여 현대 교회의 정체성을 제시했습니다. 그렇죠. 현대는 이웃과 함께하지 않으면 교회 자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고립된 교회는 정체되고, 퇴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구세군이 타 교단으로부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하게, 순수하게 끊임없이 봉사하고 있는 구세군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연결해 주는, 소위 하나님의 영혼을 사랑한 것에 있습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을 찾고, 그 영혼이 구원 받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 외엔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이기심, 기독교인의 기득권, 성도로서의 우월성이 담겨있으면 구세군 자선 봉사단의 순수성은 결코 유지 될 수 없습니다.

 

2. 자선 봉사단은 그리스도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구세군 자선 봉사단의 사역이 현대 교회가 존재하는 방향성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한국 구세군이 교회로서의 가치와 정체성을 제시하는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교육과 문화, 계몽과 의료 등 많은 분야에 괄목할 만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회의 기업화, 교회의 도덕성 결여와 부패 등은 많은 사람들을 교회와 등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게 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걱정하고, 세상을 인도해야 할 교회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게 하고, 세상이 교회를 인도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엇인가가 분명히 잘 못되었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와 명예와 권세를 맛본 한 그 달콤함은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요 세상입니다. 이제 교회는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전, 나의 실제적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만과 타락에서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와 구원의 광선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그 맛이 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신앙의 빛이 발산되지 않으면 곤란 합니다. 교회는 먹고, 즐기고, 노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맛, 그리스도의 빛을 낼 수 있도록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훈련받는 곳입니다. 더욱 더 구세군이 그래야 합니다. 자선 봉사단이 그래야 합니다. 자선 봉사단이 흐믈흐믈 해져 버리면 구세군의 이미지도 희미해져 버립니다.

 

이 세대는 얼마나 어그러지고, 상황과 세대를 거스르며 깨지고, 혼잡하고, 난잡한 세대인지 모릅니다. 웬만한 빛을 발산해도 다 흡수해 버리는 시대입니다. 웬만큼 강한 경고가 먹히지 않는 시대입니다. 현대는 교회가 문화를 제공하고, 교육을 시도하여 저들을 녹이고, 교정하기는 너무도 정체된 방법입니다. 저들을 녹이고,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맛과 빛을 제공하는 방법은 다는 방법이 없습니다. 삶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삶의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사랑으로 녹이고, 또 사랑으로 녹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구세군 자선 봉사단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3. 자선 봉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즉 복음이 없는 섬김과 봉사는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제도권에서 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것에 불과 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사명감과 헌신의 삶으로 신앙인들보다 더 깊은 사역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보편적으로 자신의 생업을 대체하는 삶으로 봉사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신앙과 봉사는 다릅니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봉사하며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기에 여기에 투신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실천하는 이 봉사와 섬김의 삶은 헛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에게 이런 말씀의 확신을 줍니다. 16절의 말씀을 보세요.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수고, 우리의 사역, 우리의 봉사는 그리스도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자랑 질은 보기가 역겨워도 이렇게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와 수고는 얼마든지 자랑을 해도 역겹질 않습니다. 얼마든지 박수쳐 줄 수 있고, 얼마든지 칭찬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못한다고 삐쭉거리면 하나님도 그런 사람들을 앞에 놓고 삐쭉거리며 책망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며 섬기는 구세군 자선 봉사단, 그리고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전제로, 관제로, 산 제물로 드리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쁨이 되고, 그것이 사람들이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17절에 "여러분이 바치는 믿음의 제사와 제물을 위해서라면 나는 그 위에 내 피라도 쏟아 부을 것이며 그것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라고 사랑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봉사와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곧 그리스도의 사역이요, 구세군 자선 봉사단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랑이 되고, 그것이 은혜가 되고, 그것이 복음의 피가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귀한 신앙인으로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구세군 자선 봉사단의 삶이 곧 구세군인의 삶입니다.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삶을 사시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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