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님이 기억하시는 신앙인(10.11)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10-11 22:28 조회수 3335


설교제목 : “주님이 기억하시는 신앙인”
성경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 ~ 5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10. 11



살전1:2-5

주님이 기억하는 신앙인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오직 예수의 부활과 재림을 설교했습니다. 이것은 죽음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의 부활하심과 다시 오심, 그리고 이 땅의 죄와 악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는 일들은 계속 물어보면 흔들리고, 의심하고, 심지어 부정도 합니다. 그러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죽을지라도 그 확신은 버리지 못합니다. 그만큼 확신은 자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더욱이 신앙의 확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죽음이 가로막아도 그 고백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좌절합니다. 실망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능력 있고, 민중을 사로잡는 지도자가 그렇게 반항도 한 번 하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를 지내고 삼일이 지났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다시 사신 것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니까 그분은 많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그 보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하늘로 가신 것을 본대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나만 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만 본 것이 아닙니다. 12명 만 본 것이 아닙니다. 고전15장에는 500여명이나 모인 곳에서 주님은 부활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소망 중에 살게 하십니다. 기도하며 전도할 때에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그야말로 믿는 자들이 마음껏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힘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힘은 어떤 고난과 역경도 뛰어넘게 합니다.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감당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이렇게 확신과 능력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전도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나타내니까 한 번에 3천명 5천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믿음생활을 합니다. 교회의 시작과, 교회의 부흥이 동시에 발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자랑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자랑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자랑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주님의 부활과 다시 오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는데 있습니다. 평강 가운데서 건강한 교회를 세워 가는 성도들이 많은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바울과 그 사역자들이 자랑하고 싶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기도하고, 말씀을 전할 때마다 자랑하고 싶은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의 성도들은 삶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은혜가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믿음, 소망, 사랑이 다 있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는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이 기억하시는 신앙인은 성령의 능력으로 일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맙니다. 성령과 함께하는 믿음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하는 복음이 곧 주님과 함께하는 말씀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 교회 일을 한다거나, 하나님의 능력 없이 복음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4-5절의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택함을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신앙인들 중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안성맞춤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맘에 들고, 당신의 말씀에 합당하며, 당신의 사역에 최적화된 교회와 신앙인을 찾고 계십니다.

 

거기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선택된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교회가 선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좀 더 깊이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전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주의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복음에 대한 확신을 통하여 우리는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회사에서 회사의 일 하지 않고 개인의 일을 하는 사람 누가 좋아 합니까? 직장의 상사에게 발견되면 징계감입니다. 주의 성도가 주의 일 하라고 했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을 하면 하나님은 결코 좋아 하시기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성도는 주의 일에 매진할 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그의 주인을 위해 일할 때 아름다운 겁니다. 여러분은 신앙인 입니까? 누가 여러분을 생각해 주길 바랍니까? 주님이 우리를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를 위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으로 수고할 때 주님은 그 사람을 기억합니다. 사랑은 배워야 합니다. 사랑의 표현과 방법은 많은 훈련이 필요 합니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야 하는, 본능에 가까운 감정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했는지 모릅니다. 나라를 사랑한다, 백성을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독재를 휘두르는 정치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족을 학대하는 가장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자식을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그 개성과 인격을 무시하여 자기 뜻대로 하려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사랑의 진실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상담 프로그램들이 부부학교, 아버지학교입니다. 부부간에 육신 적인 사랑은 할 줄 압니다만, 서로 이해하고, 관계하고 행복하며 즐겁게 부부생활을 하는 부부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연예인들의 이혼율이 높은 이유를 설문해 봤더니, 가장 기초적인 부부관계에 대하여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비약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메스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부부관계, 가정 관계에 대하여 이해도가 적다고 한다면, 폐쇄된 공간에서 직장과, 자녀들과 싸움하는 일반 가정의 관계는 오죽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의 방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권위, 폭력, 방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녀를 방치하거나, 방임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훈계와 반성을 할 수 있도록 양육하는 모습들을 성경에서 찾자는 것입니다. 귀찮으니까 말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무자비한 폭력, 언어도 문제가 됩니다. 수고해야 합니다. 일해야 합니다.

 

사랑은 수고할 때, 희생할 때, 섬길 때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수고 없는 사랑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대접받는 사랑이 있습니까? 수고 없는, 감정적이며 추상적인 사랑은 쉽게 무너지고 깨어집니다. 사랑은 이상이나, 희망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희생하는 수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담긴 수고는 언제나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즐거움입니다. 힘이 드는 줄도 모릅니다. 참된 사랑의 마음, 사랑의 정신에서 수고할 때 그 일은 더욱 빛납니다. 그래서 사랑은 곧 사랑을 부르고, 사랑의 수고는 곧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3. 주님이 택하신 교회는 주님이 콕 찍어야 합니다. 4절의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날 택하셨다는 것은 나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선함으로 선택을 받았다는 것만큼 큰 감사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날 어떤 의도로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랑거리를 담을 수 있는 귀한 그릇으로 택하셨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자기 생각과 의도로 쓸 그릇을 만듭니다. 귀하여 쓰는 그릇, 천하게 쓸 그릇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불평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그 누구도 하나님께 항의할 자격자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귀한 일들을 하기 위하여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으로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자랑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찬장에, 싱크대에, 아니 베란다에, 창고에 값만 비싸게 샀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많은 그릇들이 있을 것입니다. 버리자니 너무도 아깝습니다. 그렇다고 쓰자니 마땅히 쓸 때가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도 못쓰고 저렇게도 쓸 수 없어 처박아 놨다가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봅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택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진정한 부흥과 은혜를 나누는 행복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자립하여 시작한 교회입니다. 우리의 물질과 삶을 드려 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복 주시리라는 그 확신과 고백으로 내 믿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 신앙에 확신이 없으면 봉사 못합니다. 교제와 친교 못합니다. 내 신앙의 확실한 고백이 없으면 전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정한 구원의 고백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확실한 증거가 넘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한 삶으로 주님 살아 계심을 보여주는 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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