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믿음으로 산다는 것(8. 30)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09-03 19:39 조회수 3227


설교제목 : “믿음으로 산다는 것”
성경본문 : 히브리서 11장 1절~3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08. 30



히11:1-3

믿음으로 산다는 것 

 

여러분은 신앙인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믿음의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형통하게 합니다. 풍성하게 합니다. 지혜롭게 합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로 부귀와 영광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결과가 믿음 생활을 잘 하는 결과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참으로 권세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명예와 존경의 인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생활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믿음 생활하니까 복을 받았습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믿음의 생활을 하니까 복을 받았습니다. 참된 구원과 자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나도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막상 ‘믿음이 뭐냐?’ 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대부분 사전적이고, 낱말 적인 말로 대답을 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말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겁니다. 믿음은 의지하는 겁니다. 신뢰하는 거라고 말을 합니다. 믿음이 뭔지는 알겠는데 말로 하려고 하면 참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믿음은 세상의 부분적인 것에 대한 실력의 행사에 불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기반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아는 만큼, 이해하는 만큼 표현이 되지 못하고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참 고민스러운 것이 이 부분입니다. 나 자신도 믿음을 설명을 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믿음인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럼 과연 믿음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삶이 뭔지, 믿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뭔지,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단순히 믿음이 뭔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믿음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훨씬 이해가 쉬워집니다. 믿음은 고백입니다. 그렇다고 인정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된 데로, 인정되는 데로, 살아야 합니다. 인정이 되지 않는데 어찌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주일에 교회를 나오는 것이 믿음입니까? 주일에 다른 일 보러 가는 것이 믿음입니까? 아니 어떤 예배든지 참여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그렇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까? 성경말씀을 읽는 것이 믿음입니까? 읽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까? 교회에 나왔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믿음입니까? 설교시간에 주보에 틀린 글씨 찾는 것이 믿음입니까?

 

기도시간에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에 동참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아니면 그 시간에 눈뜨고 누가 어떻게 기도하나 쳐다보는 것이 믿음입니까? 십일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대로 생각하고 살려는 것이 믿음입니까? 내 지식과 주장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주님의 일에 우선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개인의 생활에 우선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까?

 

믿음은 이렇게 병아리 암수를 구별하듯이 구별해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믿음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늘 고민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실 믿음의 삶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믿음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결정하지 않고, 선택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곤란 당하는 겁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겁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이면서도 믿음의 분별없이, 아니 오히려 그 믿음을 슬쩍 덮어두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어려움 당하는 겁니다.

 

1. 믿음의 삶은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즉, 말씀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백하는 것은 내 마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겁니다. 표현을 했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돈을 꾸었습니다. 언제까지 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날짜가 되었습니다. 돈을 갚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않았습니다. 속이는 겁니다. 이 속이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해당하면 사기꾼이 되는 겁니다.

 

구세군 교리문 제 1조에 뭐하고 되어져 있습니까? “우리는 신구약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졌으며 성서만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의 표준임을 믿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바로 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해주는 기준입니다. 내가 지금 바르게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찾을 수 있는 지침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2차적인 어떤 신앙 서적에 의존되면 곤란합니다. 믿음이 자신의 생각으로 대체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통일이 되지 못합니다. 일치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그것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삶을 지배하면 오해 없습니다. 논쟁 없습니다. 분열 없습니다. 불순종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내 생활이 되지 못하기에 갈등구조를 형성합니다. 고통과 한숨과 분열과 공포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성경은 우리 믿음의 있고 없음, 믿음이 있는 생활 믿음이 없는 생활을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말씀의 보자기에 말씀이 없고 자기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은혜의 보자기에 아무짝에도 쓸 때 없는 쓰레기들을 치우고 나를 부요케하는 말씀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교회는 더욱 어려워 질 겁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자기 생각을 채우고, 자기 주관을 세우면 과연 하나님의 교회는 몇 동강이 날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십시오. 삶의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2. 기도, 전도, 봉사와 헌신의 생활을 쉬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을 드러내는 생활입니다. 기도와 전도, 봉사와 헌신의 생활은 우리의 붉은 죄와 허물들을 벗겨내는 작업을 합니다. 이 생활이 지속될 때 우리의 믿음이 유지되는 겁니다.

 

언젠가 현대 자동차 공장에 가 본 기억이 납니다. 일정하게 움직이는 기계에 자동자의 부품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공정에 도달하기까지 부품을 조립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공정의 부품을 조립하는 기술자가 쉬거나 결근을 하면 그 라인에서는 결코 자동차가 생산되지 못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죄악의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믿음을 아무리 청결하게 닦아 놓아도 때가 낍니다. 더러운 것이 덕지덕지 앉습니다. 이제 죄악의 도구들도 어지럽게 내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더럽고, 때가 끼지 않기 위하여 말씀을 묵상합니다. 기도를 합니다. 전도와 봉사, 헌신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청소가 됩니다. 깨끗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 전도와 봉사 헌신과 말씀, 예배의 생활이 한두 번 빠지게 됩니다. 쉬게 됩니다. 그러면 그 죄악들이 너무 많이 쌓이게 됩니다.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립니다. 도저히 내 마음에 담겨있는 죄악들, 자기 주관들, 이기적인 마음들, 생활에서 부딪히는 고통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심방으로도 해결되지 못합니다. 소위 하나님을 모셔들일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사람들 보기도 힘이 듭니다. 부끄러워집니다.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교회 출석을 점점 멀리합니다. 말씀을 들어 본지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찬송이 끊어집니다. 교회에 대한 생각이 점점 사라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더 열심히 주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죄악과 고통들이 밀리지 않도록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는 겁니다. 남들 기도 10분할 때 나는 한 시간 합니다. 남들은 주일 성결회로 만족할 때 나는 새벽부터 모든 예배에 집중합니다. 주님께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 충성합니다. 죄악들이 점점 청소되기 시작합니다. 어느덧 내 입술에 찬송이, 내 마음엔 기쁨이, 내 생활에 또 다른 활력소가 넘치게 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이건 너무도 내가 스스로 삶을 통하여 해결하기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지금 금방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이 문제는 담임사관과의 상담이나 어떤 능력자의 안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스스로의 문제입니다.

 

철저하게 주님 앞에 회개하는 겁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내 죄악들을 소멸해 주시옵소서. 이후로부터 내 믿음이 게으르지 않고, 다른 생각하지 않고 주님만 생각하겠습니다“라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3 꼭 겉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만 믿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추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의 생활을 이 세상의 가치로만 판단하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감사도 있습니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활력소도 있습니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권세와 명예가 있어도 왠지 허전한 사람들 있습니다.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있습니다. 이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축복이 아닙니다. 믿음에 의한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행복해야 합니다. 권력이 있고 행복해야 합니다. 권세와 명예가 있고 행복해야 합니다. 외롭지 않아야 합니다. 고독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 뭐냐에 대하여 무척 궁금하셨죠? 그런데 결국 믿음은 어떤 엄청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 자신이 믿음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믿음이고 그렇지 않은가를 구분할 수 있는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 생활의 승부를 거는 여러 가지 방법들도 있습니다. 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믿음의 부분적인 요소들이 되는 겁니다. 말씀의 고백을 실천하세요. 기도와 전도, 봉사와 헌신, 예배에 우선한 생활을 하세요. 주님께서 반드시 복주고 복주며 여러분이 바라는 모든 것들이 이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맛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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