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8.16)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08-17 15:49 조회수 3166


설교제목 :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성경본문 :  시편 50장 7절~15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08. 16



시50:7-15

당신은 소증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진정한 신앙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신앙을 형식주의나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전략적 행위에 치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육의 원리에 따라 시청각, 즉 보고, 듣고, 경험하는 원리를 하나님이 가장 많이 활동하신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예배는 시청각 교육이 아닙니다. 예배는 사람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우리가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우리가 여기에 모여 예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날 찾으시고, 내가 주님을 찾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주님 없이도 잘 삽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하지 않고서도 지금 이 시간 까지 잘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 앞에 나오지 않아도 난 아무런 거리낌이나 장애가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보이지 않으면 참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우리 생각에 주님이 내가 무엇을 하던지 잘 아시는 주님이 왜 날 그렇게 찾으시고, 날 보고 싶어 하십니까? 참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 드릴게요. 주님은 영(靈)이십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주님이 부르시고, 주님이 찾으시고, 나를 만나러 오셔도 내가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로 만날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부르고, 주님을 찾고, 주님을 경험하려고 시도할 때 주님은 응답하시고, 반응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그렇게 찾으시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소위 영의 음성은 육신이나 물질적 세계나 감각으로는 경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영적인 통로를 열고, 그 감각과 경험의 기관을 열 때에 주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우리의 육체적 감각에 지나치게 집중하기에 영적인 통로를 통하여 주님을 경험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찾으십니다. 그렇게 신중의 신이시고, 만물의 창조자 통치자이신 그 주님이 나를 만나기를 그렇게 소원하십니다.

 

나의 음성과 나의 영을 통하여 주님과 교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존재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에 주님인 우리와 교통하십니다. 물론 지금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문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육신적 센서가 지나치게 강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여러분이 경험하셔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적 감각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주님 앞에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는 깊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지 모를 정도로 우리 하나님은 날 사랑하십니다. 목숨을 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 다 내 놓으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1. 하나님은 내가 가진 물질적인 것 때문에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7절의 말씀을 보세요. 우리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표준 새번역 성경은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말한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두고 증언하겠다.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앞에서 감히 거짓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두고 증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기 이전에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지키시고, 나 때문에 목숨 거시는 분이십니다. 그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은 낮고 천한 나에게 오셔서 내 앞에서 '너,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 오셔서 '천하 만민이 두려워 경외하는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라고 증명해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저와 여러분이 뭐 볼 것이 있다고 나에게 찾아 오셔서, 내가 널 사랑한다. 너 없으면 못산다. 너는 나의 보배다. 이 천하의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미치거나 정신이 나가지 않으신 다음에야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나에게 오신 겁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고 말이죠.

 

내가 가진 게 있습니까? 그렇다고 목숨 걸고 주님을 위하여 봉사를 한 게 있습니까? 그렇다고 전도라도 열심히 한 게 있습니까? 8절-12절의 말씀을 보시죠.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하나님은 내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나, 예물로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내 것을 빼앗거나 갈취하지도 않습니다. 천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아깝고, 인색한 마음으로 조금씩 깎아서 주 앞에 가져와도 주님이 모르시겠습니까? 다 압니다. 그래도 주님은 받습니다. 왜? 천하의 것이 당신의 것이고, 하나님은 그래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물질 때문에 우릴 만나려고 하면 하나님은 저질 신이십니다. 어떤 무속 신앙인들처럼 '정성이 부족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2. 하나님은 내 마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정말 좋은 것은 내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 마음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 속이면서 예배하고, 십일조하고, 예물을 드려도 그런 거 다 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13-14절에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동물의 제사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제사는 동물의 피가 아닙니다. 어떤 예배의 형식이나, 그곳에서 표현되는 물질, 물량주의도 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는 그 마음에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물질로 표현되고, 마음이 예배로 표현되고, 마음이 찬양으로 표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현대는 이것이 거꾸로 되었습니다. 물질을 많이 드리면 내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가 되고, 예배의 의식이 거룩하고, 뭔가를 보여 줘야 예배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교회의 찬양대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 부족합니다. 지금 이 교회의 악대원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악기 부는 자를 다 동원하고, 찬양대를 다 동원해도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라는 표시로 두 손을 펼쳐,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진정한 마음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찬양과 경배가 표시되어야 합니다. 정말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머리 숙여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심은 내 마음의 고백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첨부가 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원하시는 것 맞습니다. 그런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서원이 뭔 줄 아시죠? 서원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다짐한 것을 서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시고, 귀하게 여기시지만 그 마음의 약속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변하고, 기분에 따라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세가 달라지면 곤란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의 마음은 변함없이, 어떤 상황에 있던지, 어떤 형편과 처지가 나에게 있든지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만 향해 있다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이 변함이 없으십니까? 하나님과의 약속이 변함이 없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이미 약속된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까? 지금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지금은 만이 변질 되셨죠? 그래도 하나님은 그 처음에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먹었던 그 순수한 마음을 기억하시고 나를 살리시고, 돌이키시고, 회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그건 알고 계시죠? 알고 계셔야 합니다.

 

3. 하나님은 나의 부르짖음에 아주 귀하게 응답하십니다. 정말 괘심합니다. 하나님이 돈을 달랍니까?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사기를 칩니까?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변하고 부패해도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시겠다고 나를 보듬어 주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손길과 그 여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께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그게 뭐냐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는 말씀입니다.

 

좋아 잘 나갈 때 주님을 잊어 버려도 괜찮습니다.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러워 주님을 생각할 힘이 없었어도 괜찮습니다. 너무 급박해서 예배나 예물이 좋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다 이해하십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용서하십니다. 몰라서 그랬구나, 급해서 그랬구나, 어쩔 수 없어서 그랬구나, 오죽 했으면 그랬겠어...... . 하면서 다 넘어 갑니다. 그렇게 안타까워하시면서 조용하게 한 말씀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날 불러. 내가 옆에 있잖아. 내가 도와줄게. 내가 너 살려 줄게. 내가 너 평안하게 해 줄게.'

 

이것이 우리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입니다. 얼마나 급하고, 얼마나 긴박하고, 얼마나 우리에게 힐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으면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쏟으셨겠습니까? 마치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 죽어가는 자식의 입에 당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쏟아 자식에게 먹이시려는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주님이 하실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힘들도 어려워도 '주님!', '주여!' 이 한마디가 날 살립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께 정말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주님이 나를 건지시는 법은 다양합니다. 정말 위급해서 나를 안전하게 빨리 도우실 수 도 있습니다. 또는 나를 더욱 강하게 하시기 위하여 나의 체력을 강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나를 영적 무장시켜 주시기 위하여 주님과 합숙훈련 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지금 많이 힘드십니까?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 하나님이 응답이 없으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뭔가 준비를 시키는 과정 중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응답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누가 뭐래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소중합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혀를 찰지 몰라도 나는 하나님께 소중합니다. 그 믿음 하나고 조금만 참아 보세요. 우리 하나님이 나를 들어 세상에 드러내놓고 자랑할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이 말씀에 소망을 담으세요. 분명히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님이 나를 귀한 백성으로 세워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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