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말할 수 없는 감사(7.19)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07-19 20:15 조회수 3167


설교제목 : “말할 수 없는 감사”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9장 10~15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07. 19



고후 9:10-15

말할 수 없는 감사

 

 

 

여러분은 살면서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게 몇 번이나 됩니까? 그리고 그 감사함의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부모님? 자녀? 아내나 남편? 아니면 교회? 담임사관? 하나님? 정말 잊을 수 없었던 감격과 감동이 몰려오는 감사함이었습니까? 그런데 그런 감사함을 얼마나 경험 하셨습니까? 어떤 사람은 많은 감사의 경험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그런 적이 있었나?'하면서 물음표를 찍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한 번 되돌아보자구요. '감사'라는 단어를 놓고 보았을 때 우리는 구분을 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감사도 있구요. 신앙생활을 통해서 겪은 감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겪은 감사가 되었던, 신앙적으로 겪었던, 그것이 어떤 감사이던 생각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감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땐 잘 몰랐는데,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때 그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때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몸부림쳤는데 그 때 안 된 것이 정말 잘 된 결과였습니다.

 

뭐든지 지나놓고 생각해 보면 후회가 되고, 감사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그것이 감사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되새김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즉,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 감사였습니다. 그 감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산겁니다.

 

어떤 미련한 사람은 지금까지 그것이 원망이고, 불평이고, 한숨으로 여전히 남겨두고 되씹고, 또 되씹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되씹은 것은 다시 곱씹어 보세요. 감사의 맛이 날 겁니다. 감사의 육즙이 내 입과 마음에 가득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맛은 그냥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맛을 아주 음미해야만 그곳에서 '감사'의 맛이 나옵니다.

 

아무리 매운 것을 먹거나 쓴 것을 먹어도 사람은 그 맛에 겁이 나서 얼른 먹어버립니다. 그렇게 먹어버리면 그 뒤 끝에 남는, 그 맛이 가진 참맛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감사는 그런 겁니다. 독하고, 괴롭고, 피하고 싶은 경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숨어있는 깊은 영적경험이나,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고난과 역경이지만 그 깊은 중심에 아주 큰 복과 은혜를 담아 놓고 계시는 겁니다. 지금은 역경이고 고난이지만 자꾸 되씹으면 감사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능력, 영향력이 되는 겁니다. 똑같이 좋은 일이 있고, 특별 한 일 없이 사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내 인생에 있어 역경과 고난의 길을 걷고 있거나 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은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것이 신앙의 영향력입니다. 그것이 전도의 힘이 되는 겁니다. 그 가장 막강한 능력과 힘이 바로 '감사'입니다.

 

1. 열매를 맺게 되도록 씨앗을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뭘 하나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이죠. 공동번역은 "뿌릴 씨와 먹을 빵을 농부에게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뿌릴 씨를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십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비빌 언덕도 주시고, 급박한 상황에서 한 가닥 희망의 줄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을 주십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십니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씨앗이 있습니다. 그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 그럼 나는 손가락 빨고 있으라는 말입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보입니다. 씨를 심고, 열매가 맺기까지 하나님은 먹을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뿌릴 씨앗과 먹을 것을 동시에 주십니다. 소위 굶어 죽지 않도록 말이죠.

 

씨앗과 먹을 양식이 뭡니까? 개역개정 성경은 '의로움'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 번역은 '자선을 베풂'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심고, 선함을 행하며, 봉사를 하는 것들이 곧 나에게 열매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 열매를 11절에 "모든 일에 넉넉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되는 안 되는 하나님 앞에 선함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평안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소위 예쁜 구석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죠. 뭐 하나를 해도 선한 의도가 보이질 않습니다. 말을 해도 가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꾸 눈치를 봅니다. 뭐 그럴 거까지 있습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의 생활을 한 번 돌아보세요. 나를 향한 사람들의 관계, 교회와 나와의 관계,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돌아 보셔야 합니다. 11절을 공동 번역은 "이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부요하게 되어 남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돈으로 봉사하고, 헌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 보세요. 내 생각이 그래도 상대를 이해하고 덮어 줘 보세요. 그러면 언제나 부요하게 됩니다. 내가 부요하지 못해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돕고, 나의 쓸 것을 공급해 줍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거 감사의 조건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늘 감사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늘도 우리에게 씨앗과 먹을 것을 주신다는 것을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나에게 늘 풍족하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늘 풍족하게 하시는 것은 신앙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풍족함'외에는 다른 것은 풍족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점심을 먹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점심식사로 국수도 먹고, 빵도 먹고, 야채도 먹습니다. 물론 고기도 먹겠죠? 그 다음에는 꼭 밥을 먹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밥을 먹은 것 같지가 않다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입니다. 국수는 식사가 아닙니까? 빵은 식사가 아닙니까? 식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밥을 별도로 찾아 먹습니다. 이런 이치와 같습니다. 풍족함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늘 '물질의 풍족'을 찾습니다. 아닙니다. 생활의 풍족도 있습니다만, 마음의 풍족도 있습니다. 늘 삶에 쫓기지 않는 여유도 풍족입니다. 고민하고 갈등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갖는 것도 풍족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는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질만 많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넉넉했다고 합니다. 제가 중요한 사실 하나 말씀드릴께요. 돈만 많다고 헌금 많이 하나요?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풍족하다고 해서 성도들이 헌금을 하나요? 아니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만한 믿음이 되니까 헌금하는 겁니다. 믿음이 안 되는데 어떻게 헌금을 합니까?

 

조금 더 나아가 봅시다. 오늘 말씀에는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함'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의 풍요함 만으로는 넉넉하게 헌금 못합니다. 단지 돈이 많다고 해서 주님 앞에 많은 헌금 할 수 없습니다. 그만한 믿음이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넉넉한 믿음이 있으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목마른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12절의 말씀을 보세요.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고 했습니다. 11절에는 '연보'라고 했는데, 12절에는 '봉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공적인 일로서 제사장이 담당하는 예배 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질을 주님께 드리는 일을 봉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임무를 맡아 사역하는 것도 봉사입니다. 자선하는 것도 봉사입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돈으로 할 수 없다면, 마음도 몸도, 시간도, 생각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겁니다. 다 봉사의 사역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헌금도 하고, 봉사도하고, 사역도 하는 것입니다. 날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이렇게 물질 드리고, 봉사도하고, 사역도 하는 겁니다.

 

3. 감사는 말할 수 없어야 합니다. 감사는 셀 수 있는 개수의 의미가 아닙니다. 감사는 생각하는 만큼 늘어납니다. 감사는 번식력이 아주 뛰어 납니다. 생각만 했다하면 수십 개씩 생겨납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로 감사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면 탄생합니다. '오빠 믿지? 손만 잡을께'했는데 생명이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는 단지 생각만 해도 탄생합니다.

 

자녀들도 태교를 잘해서 인물좋고, 성품좋고, 똑똑한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좋은 음악듣고, 좋은 책이나 시를 읽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먹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은혜로운 감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은 더 많이 더 깊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 생각에 하나님이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묵상하는 겁니다. 그럼 그 생각은 엄청난 감사로 탄생합니다. 내 일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평생 살아온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14-15절의 말씀을 보세요.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평생 나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기도와 감사를 받으신 하나님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선물, 은혜를 나에게 주십니다.

 

나의 소박한 넉넉함의 나눔이 또 다른 나를 만듭니다. 그것이 복음이 됩니다.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 작은 나눔은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단지 물질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지금 내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날 이렇게 지탱하게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감사는 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의 삶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순간에 수백 개의 감사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오랜 연단을 통해서 아주 커다란 감사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이시간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감사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주님께 '주여!'하면서 기도하는 순간부터 감사의 기능은 작동됩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이 주의 은혜로 순탄하게 되는 것은 감사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감사, 한량없는, 양이 제한되지 않는 무한감사가 오늘 여기 모이신 주의 백성들에게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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