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세군의 병사를 찾습니다(7.5)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07-06 10:55 조회수 3038


설교제목 : “구세군의 병사를 찾습니다”
성경본문 : 빌레몬서 1장 1~7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07. 05



몬1:1-7

구세군의 병사를 찾습니다

 

 

 

군인은 한 번의 전쟁에 사용되기 위하여 국가가 항상 예비해 놓은 조직체입니다. 언제 전쟁이 날지 모릅니다. 어쩌면 영원히 전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각 나라는 그 나라의 총 예산의2-50%의 어마어마한 재력을 군인 양성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좀 심각하게 생각하면 그 나라의 모든 재산을 걸고서라도 군인을 양성해야만 하는 것이 호국의 가장 큰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국민들이 그 가난한 중에서도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해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나라가 존재하는 한 그 재정이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 것을 묻지 않고 국방비로 지출하는 것은 지나친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어느 나라든지 부한 나라든지, 아니면 가난한 나라든지 자국의 수호을 위하여, 엄청난 국가의 재산을 감당하는 것은 그만큼 과거나 현대에 있어서 군대의 존속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많은 재력을 투입하여 존재하는 군인들이 날마다 놀고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언제 전쟁이 날지 늘 긴장하고, 훈련하면서 항상 전쟁을 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전쟁은, 싸움은 얼마나 그 기술을 몸에 익히고,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라집니다.

 

자신이 훈련에 어떻게 임하느냐하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얼마만큼이나 연장 받을 수 있는가와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훈련을 실전같이 하지 못하면 결국 유사시에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음은 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는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의 군대로서 구세군 교회가 있습니다. 구세군 교회의 성도, 즉 병사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구세군 군병들이 얼마나 막강한 능력,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1865년에 구세군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 때 이 지구상에 교회에 없어서 구세군을 세워주신 것 아닙니다. 이 땅에 성도들이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구세군을 세워주신 것도 아닙니다. 구세군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기에 하나님은 구세군을 허락하신 겁니다.

 

지금이라도 구세군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특별하게 감당할 일이 없다면 “구세군”이라는 이름의 성도들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구세군은 하나님 나라의 강한 군대로 존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구세군을 바라보면서 과연 구세군이 하나님 나라의 맨 앞장에 설 수 있는 가장 강한 하나님의 군대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세군이 이 시대 많은 기독교인과 세상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한 군대로서, 강한 하나님의 군대로서, 본을 보여주고, 삶을 보여주고, 믿음을 보여 줄 수 있는 ‘훈련 조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세군 교회 성도들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구세군인들의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복음으로 인하여 감옥에 있을 때 그곳에 잡혀 온 오네시모를 만냐게 됩니다. 그 사람은 주인되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도망을 하였다가 붙잡혀 바울의 전도로 예수를 알게되고, 다시 바울의 배려로 인하여 주인의 집으로 돌려 보내지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레몬에서 보낸 편지를 잘 보세요. 얼마나 진실하게 예수 안에서 칭찬하며 격려하는지 모릅니다. 바로 여기에 구세군의 군사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모두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1. 구세군의 성도라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1절과 2절에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빌레몬을 동역자라고 했고,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추측하기를 암비야는 디모데의 아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킵보는 바울을 선교사역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으로서 바울을 도우며 박해와 시련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투옥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킵보를 “군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보던지 하나님의 군대의 군사는 자신의 영력을 세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훈련이 있어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훈련을 받은 의미가 없습니다. 훈련은 참가하고, 자기를 이길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구세군의 병사는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전도는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입니다. 사단과의 전쟁임을 즉각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과연 훈련받은 성도가 성공하고 실패의 교차를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전도의 훈련입니다.

 

친교와 봉사는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나만 좋기 위해서 친교하고 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지 않아도,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다른 사람이 좋고 즐거울 수 있다면 더욱 보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 이익과 자기 주장에 빠져버리면 친교와 봉사의 의미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훈련은 곧 실전을 낳습니다. 전도와 친교, 봉사와 예배 등 이런 것들이 훈련되지 못하면 실전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신앙으로 자신을 무장할 수 있고, 영적 전쟁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모두 허사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자기의 믿음을 지킬 수 없는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서의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구세군은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의 군병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 조차도 감강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한 신앙으로 어떻게 남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2.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4절 5절에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학생들이 공부 잘하기를 원합니다. 좋은 대학 가기를 원합니다. 좋은 직장 갖기를 원하고 좋은 환경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잘 되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환경은 한정 되어 있습니다.

 

결국 점수를 매기면 1등부터 순서가 정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은 등수를 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자신의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절대로 신앙생활에 대하여 만큼은 남에게 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지를 듣습니다. 내가 하는 일 마나 좋은 인상, 좋은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과연 좋은 신앙인들을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게 됩니다. 구세군인의 특징입니다. 구세군인은 둘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군복을 입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내가 구세군 교회의 성도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내가 행동하는 결과에 따라서 ‘구세군’ ‘구세군’합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비취면 ‘구세군 좋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내가 찍혔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구세군’이 싫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구세군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세군은 특별하게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고도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고난과 극기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세군인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명예있게 생각하고,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께 도달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6절에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구세군의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우리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하나님도 그 믿음에 보답하여 무한 복을 허락해 주실줄 믿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얼마나 주님을 향하여, 교회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바울이 감동을 받고 마음에 생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기가 있게 합니다. 즐거움이 있게 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죽기까지는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죽진 않았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죽도록 수고하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 구세군 교회의 진정한 군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신 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를 돌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 하나님의 군대, 구세군 병사를 찾습니다. 21세기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를 찾습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수고과 애씀이 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주인공이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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