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성도여 이렇게 살아라(6.21)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06-22 22:51 조회수 3171


설교제목 : “성도여 이렇게 살아라”
성경본문 : 에베소서 5장 1~3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06. 21



엡5:1-3

성도여 이렇게 살아라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의 뜻은 '성결'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아 성결해진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들을 살펴보세요. 여러분, 성결한 성도가 눈을 위아래로 치켜뜹니까? 성결한 성도가 남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합니까? 성도가 주의 종의 권면에 반대를 합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을 내 심령에 심은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DNA를 내 마음과 삶에 심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신앙생활하며 살아가는 삶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썩은 냄새는 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답고, 교회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하나님의 거룩을 가슴에 심은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사탄, 마귀의 유혹으로 인해서 교회에 갈등을 발생시키는 사람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결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마귀의 유혹으로 끌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지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인지, 아니면 마귀의 유혹인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리면 하지 마세요. 꼭, '아녜요 사관님'하고 오히려 더 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사람들이 내가 행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리고, 권면하면 빨리 알아채고 주의 성령의 뜻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가 되었건, 적은 교회가 되었건 누구를 막론하고 말리면 '아, 내가 하는 이 말과 행동이 신앙적이 아니었나?'하고 한 번쯤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신앙적 겸손을 배울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사항입니다. 성결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의 외적 표현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으면 성로로서 예수 그리스도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무는 헌신과 희생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려면 이것은 필수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는 성도가 헌신과 희생이 없다면 그는 성도가 아닌 교인에 불과합니다. 교인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교회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는 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서적 원리를 세워야 합니다.

 

원리나, 기초, 바탕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정식적으로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결코 우리눈에 바른 모습으로 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신앙의 기초는 든든한지 살펴 보셨습니까?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1. 성도는 하나님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난 후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창1:26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모양대로, 온전한 인간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핏줄은 속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내 자식은 우리 부부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 중에 누구의 속성과 외모를 닮았는지도 중요합니다. 좋은 건 날 닮아야 합니다. 좋지 않은 건 아내나 남편이 닮아야 합니다. 그래서 늘 싸웁니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착하고 공부를 잘하느냐고 말이죠. 또 싸웁니다. 누굴 닮아서 저 모양 저 꼴이냐구요.

 

이렇게 사람도 좋은 성품은 날 담기 원합니다. 같은 부부라도 좋지 않은 것은 날 닮지 않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성품 뭐하나 빠짐없이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받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방하는 사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모조품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이미테이션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미테이션, 즉 하나님의 성품을 흉내내고, 하나님 닮기를 노력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표준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이나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답다'는 말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라는 겁니다. 소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면 저와 여러분도 그만큼 값어치가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인데, 자식들이 그것을 말아먹는 망나니가 되어선 안 됩니다. 적어도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망조이고, 교회의 망조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은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성도로 불림을 받으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았다는 자긍심, 정당성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으로 사는 성도들이 있다면 전도가 안 될 수 가 없습니다.

 

2.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하는 생애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외모와 성품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 삶을 사는 것 보면 망나니입니다. 뭐하나 똑 부러지게 신앙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옆 사람을 보세요. 신앙생활 똑 부러지게 합니까? 어떻게 하죠? 한 대 때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쫓아낼 수도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처럼 사는 겁니까?

 

2절의 말씀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의 분량을 확인시켜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뭐든지 확인 받기를 원하시죠? 연애하면 꼭 하는 말 '자기, 나 얼마나 사랑해?' 얼마나 사랑한다고 해야 맘에 드시겠습니까? 그리고 결혼해서 그 사랑의 분량이나 가치만큼 사랑하고 계십니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말이 '뻥'인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확인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한 그 사랑이 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헌신과 희생을 동반합니다. 헌신과 희생을 동반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찐빵을 만들어 볼께요. 찐빵을 하려면 제일 먼저 뭐가 있어야 합니까? 밀가루가 있어야 합니다. 밀가루에 효소를 넣어 잘 부풀려야 합니다. 그리고 속엔? 소위 '앙꼬'라고 불리는 내용물이 있어야 합니다. 팥이 들어가던지, 아니면 만두소와 같은 야채가 들어가던지 말이죠. 그래야 찐빵이 됩니다. 속이 없는 것은 찐빵입니까? 아닙니까? 찐빵이라고 하지만 맛이 없습니다. 찐빵은 속에 팥을 먹는 맛으로 먹는거죠.

 

사랑은 헌신과 희생이 빠지면 사랑이긴 하지만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사랑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렸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 헌신과 희생을 동반한 사랑이 충만한 성도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원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성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성도들의 삶으로 서로 교제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성도는 죄악에서 떠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거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라는 말 자체가 성결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결이 깨지면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깨지면 성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이 깨지면 더 이상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은 악에서 떠난 거룩입니다. 거룩이 없이는 성도의 본분을 행할 수 없습니다.

 

3절의 말씀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추한 것, 어리석은 것, 희롱하는 것, 우상 숭배하는 것, 속이는 것은 모두 다 죄악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든 죄악들이 많이 있지만 성경구절마다 죄악 중에 가장 큰 것을 탐욕으로 꼽습니다. 골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아니더라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성도이면서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이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 윤리와 도덕을 외면하고 살 수 있습니까? 욕심이 가득한 우상 숭배의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진 않습니까? 이제 교회에서 서로 존대해 주고, 인정해주고, 섬겨 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눈 흘기면 성도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겁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을 해 버리면 그것도 성도의 본분에 어긋나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도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사랑에 먹칠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은 성도로서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도가 맞습니까? 하나님의 거룩을 가슴속에 품은 사람들 맞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을 실천하고 계십니까? 째려보고, 눈 흘기며 못마땅해 하시는 분 없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생각과 말과 삶이 바뀌시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성도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심령 속에 섬김과 헌신, 희생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신앙적 성숙도가 높은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정말 우리 교회가 성자들의 교회, 성도들의 교회, 거룩을 말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도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구세군인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몸에 배지 않으면 성도의 삶을 찾을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닮고, 예수를 닮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섬기며 사랑하며 희생하며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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