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부모님을 주님처럼(5.10)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05-12 17:30 조회수 4354


설교제목 : “부모님을 주님처럼”
성경본문 : 레위기 19장 3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05. 10



레19:3

부모님을 주님처럼(어버이주일) 

 

어머니날의 시작은 미국의 쟈비스 부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동쪽 버지니 웰스터라는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26년간이나 꾸준히 주일학교 교사로 수고하던 독실한 교인 쟈비스 부인이 세상을 떠난 몇 해후에 그 신앙과 인격을 잊지 못하여 추도식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부인의 딸 안나가 참여하여 어머니 쟈비스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순서를 가졌습니다. 딸 안나는 생전에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다가 말을 합니다. “우리 어머님이 주일학교에서 가르치시던 때에 그 날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배웠는데 그 말씀가운데 ‘여러분, 여러분 중에 누구라도 좋으니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과 헌신에 대하여 진정한 감사의 뜻을 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드릴 수 있을는지 생각해 주길 바래요’라고 하신 말씀을 소개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안나의 말에 큰 감명을 받고, 또 안나가 추도식 석상에서 어머니를 생각하고 카네이션을 바친 데 대하여 호감을 갖고 일 년에 한 번씩 어머니 사랑에 감사하는 날을 정하자는 논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한 교회에서 시작된 자그마한 운동이 점차적으로 이웃교회로, 다른 동네로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후부터 어머니가 살아 계신 자녀들은 빨간 카네이션을,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녀는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그 날을 축하하는 풍습이 생겼고 최근에 들어서는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주장을 펴 흰 카네이션을 꽂지 않고 빨간 카네이션만 사용하는 예도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선교사들이 이날을 지키도록 지도하였고, 그 지키는 법으로는 특히 예배와 자녀들의 감사 이야기, 노래들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1955년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그 해 5월 둘째 주일인 8일에 어머니날을 지키도록 정하여 주일에 무관한 매년 5월 8일을 어머니 날로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포함하고 조상과 모든 어른들을 위한 날로 포괄적인 규정을 한 점이 특색이며 1956년 국무회의에서 해마다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17회까지 행한 뒤 1973년 3월 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6615호)에서 어버이날로 개칭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어머니날이 5월 8일은 주일날에서 시작되었기에 자연적으로 5월 8일로 정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어머니 주일을 최초로 실시한 것은 1930년 6월 15일 구세군 가정단에 의해서 행하여 졌다는 역사적 기록이 나타나 있습니다.

 

한국이 어렵다고 해도 풍요와 소비는 어느 때보다도 풍성합니다. 요즘 뉴스에서는 경차의 판매는 줄고 중형차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저 생계 가정과 고소득 가정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은 풍성한 나라인 것은 틀림이 없죠. 우리 어버이들이 만들어 놓은 풍성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패와 사치, 정치적 불안 속에서도 현대 한국 사회가 이렇게 고도성장하여 정보통신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 어버이의 노력과 수고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 극심한 가난을 이겨내시며 자녀 교육에 인생을 바치신 어버이의 수고와 애씀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어버이들이 가족 중 관심의 대상에서 8번(아들, 딸, 남편, 아내, 직장, 사업, 애견)이랍니다. 애견(愛犬)보다도 더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난 순위입니다. 그렇게 수고와 애씀, 나를 돌보시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는 그 은혜가 애정 대상에서 순위 밖으로 밀려 버렸습니다.

 

소위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그래서 십계명 중에 사람을 향한 제일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십계명 중에 하나님을 향한 계명이 '나 이외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면 인간을 향한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겁니다.

 

1. 부모를 경외해야 합니다. ‘경외’(arey:: 야레)라는 말은 ‘두려워하다’, ‘깜짝 놀라게 하다’, ‘겁이 나다’라는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앞에 두렵고 떨리는 그 자세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부모님을 섬겨야 합니다. 성경 모든 부분에 부모님을 섬긴다는 말과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을 똑 같이 ‘야레’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인이 부모님을 잘 섬길 수 있는 겁니다. 부모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곧 하나님도 잘 섬길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신앙의 자세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는 겁니다.

 

마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도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행동은 외식적이고, 가식적이지 않은 이상 마음에 우러나오는 것이 행동으로 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출20:12절에는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부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는 표현을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5:6절에는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생명이 길다’라는 말은 ‘억지로 잡아 늘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것이 생명일지라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그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생명까지도 책임지십니다.

 

그런데 부모공경을 하지 못하는 자녀에게는 던져진 너무나 험악한 말씀이 신21:18-21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반항만 하며, 고집이 세어서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는 아들이 있거든, 그 부모는 그 아들을 붙잡아, 그 성읍의 장로들이 있는 성문 위의 회관으로 데리고 가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우리의 아들이 반항만 하고, 고집이 세어서 우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방탕한데다가 술만 마십니다. 하고 호소하여라. 그러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서, 너희 가운데서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온 이스라엘이 그 일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공경을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불경한 죄인가를 신앙인들에게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27:16에는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라고 강제로 예, 아멘 하도록 선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공경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 부모님은 나에게 용돈주고 학교를 보내주고, 내가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물질의 후원자로 생각합니다. 결혼하면 부모님의 재산이 혹시 나에게 오지 않을까하는 조건을 보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결같이 사랑하고, 공경할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까 신앙 생활하십니까? 아니면 이미 날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경배하십니까? 그렇죠? 이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나의 억만 죄를 다 없애 주셨기에 그 은혜 감사하여 예배하고, 경배하고, 전도하는 거죠. 부모님께서 이미 나를 낳아 주신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겁니다. 먹을 것 참으시고, 그 고생 마다 않으시고 각종 질병 약봉지 옆에 끼시고, 이렇게 키워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조금 고생스럽다고, ‘어머니 왜 날 나셨나요?’ 부모님 되면 늘 가슴 치며 살 인생입니다.

 

2. 부모 공경은 누구에게 책임으로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참 재미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너희 각 사람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 번역에는 ‘너희는 각자“라 했고, 표준 새번역에는 ”너희는 저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구약 히브리말로 보면 '이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현재 존재하는 사람'을 의미 합니다. 부모를 경외하는 사람은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장남, 모시고 있는 사람, 돈 많은 자녀, 생활의 여유가 되는 자녀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지 않은 이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겁니다. 장남이 부모를 모십니다. 그럼, 다른 아들과 딸은요? 귀여움만 받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가 자라면 어른이 됩니다. 부모가 됩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어린 사람들에게 또 존경을 받아야합니다. 공경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도는 겁니다. 내가 잘 해주면 대접받는 겁니다. 내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겁니다. 교육시킨 대로 보답을 받는 겁니다.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속 썩이고, 말 안 듣는 자녀에게 “너는 시집 장가가서 너 같은 자식 나 봐야 내 맘 알꺼다”라는 말을 들었던 분 여기 혹시 없겠지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자식에 이어 손자 손녀까지 못된 꼴보고 할머니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것은 그만큼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해야 또 그 또 그 후손들이 부모를 공경하게 되기 때문에 교훈적으로 하시는 말씀이죠.

 

철저하게 부모님께 효도한 부모님은 또 자녀에게 그만큼 공경을 받습니다. 부모님께 삿대질하고 대들었던 부모는 그 자녀에게 따돌림 받지 않으면 다행합니다. 이왕이면 어버이주일에 자녀와 화평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사랑과 존경을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인의 부모공경은 윤리나 도덕의 차원이 아닙니다. 법칙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부모 공경은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는 그대로 우리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태초에 말씀이 선포되어 천지가 생겼습니다. 말씀으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는 곧 생성입니다. 창조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천지가 생성되고 빛이 생기고 바다와 육지가 생겼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부모를 공경하라고 선포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면 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와 죽음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행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빈자리를 찾아서 앞뒤로 살피시며 다녔습니다. 한 자리가 나오면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막 저를 부릅니다. ‘아가, 여기 자리 났다. 빨리 와서 앉아라!’ 사춘기 당시 그 엄마의 행동이 얼마나 창피하고 무안한지 자리에서 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것이 사랑인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자식을 키우며 보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들이 이런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알아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부모의 대리만족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나보다 나은 조건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마음이 강하게 표현되었을 뿐이겠죠. 이제 노부교님들 뵈면 우리 어머니 같아요. 내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의무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부모공경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입니다.

 

3. 부모 공경은 곧 주일을 지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세요. 부모님을 경외하는 것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같은 맥락으로 기록해 놨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과 만나는 날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날의 주인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복 주시며, 교회를 만드시고 그 사랑하는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마땅히 경배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듯이 보모님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권위와 위엄이 있으시다면 부모님께도 그렇게 권위와 위엄이 있으신 겁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은 안식일을 하나님이시며, 부모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곧 하나님하면 주일을 생각하는 것이고, 주일하면 부모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은 세상이 말하는 윤리와 도덕을 훨씬 강하게 요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도의와 예의, 도리와 법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신앙인 되신 여러분은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가정입니다. 부모님은 왜 나를 공경하지 않느냐며 자식을 훈계하고, 자녀는 왜 부모의 도리를 안 하느냐고 하면 서로 망하는 길입니다. 탓을 하면 신앙인 아닙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부모님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부모님은 존경의 대상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부모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하나님과 같이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애완견 다음으로 여덟 번째 값없이 소외되는 부모님이 아니라,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가 되고, 1번 될 수 있도록, 부모님을 주님처럼 공경하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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