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은혜로 사는 사람(3.22)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5-03-22 20:16 조회수 4571


설교제목 : “은혜로 사는 사람”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8장 1~7절
설 교 자 :  담임 사관
설 교 일 :  2015. 03. 22



고후 8:1-7

은혜로 사는 사람

 

 

우리가 보통 신앙적으로 말하는 것들 중에 ‘은혜롭게 해’라는 말을 하던지 ‘자 사람 참 은혜롭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은혜’라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은혜 받았다’라는 말도 많이 합니다. 우리는 ‘은혜’에 대하여 참 많은 말을 합니다만 무엇이 은혜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은혜로운 삶인지 정리를 하지 못하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인자함, 친절함, 자비로움, 사랑, 변치않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 등이라는 말입니다. ‘은혜롭다’라는 말은 변함없이 친절하고 사랑을 베풀며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품성을 가졌을 때 은혜롭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삶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은혜를 생각하면 ‘신이 그 선택한 백성에게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은혜라는 말을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친절하고 사랑의 표현을 잘하기도 하고 섬김의 모습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주 신실하게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봉사도 잘하고 맡은 사역에도 얼마나 열심을 다하는지 모릅니다. 항상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을 보면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풍체가 후덕하면 은혜롭게 생겼다고 말합니다.

 

은혜를 순우리말로 표현하면 ‘도와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부탁 한 번 하면 언제든지 만사를 제처 두고 도와 줄 것 같은 사람을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급하게 기도하고 요청하면 즉시 응답하시고, 도와주시는 주님의 성품을 ‘은혜롭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혜에 대하여 대충 정리를 해보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은혜로운 사람’은 친철하고 사랑이 있고, 잘 섬기고 봉사 잘하며 기도에 열심히 있는 사람, 신실한 사람, 부탁하면 언제든지 들어 줄 수 있는 사람, 마음과 생각과 삶이 넉넉한 사람이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정리할수 있겠습니다. 교회에는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까칠하고, 틱틱 거리고, 항상 못마땅한 인상가지고 느릿느릿하고 뭔가 이야기를 시도하려면 한방에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웃기는 웃는데 자기 좋을 때만 웃고 상대방의 어려움에는 관계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말이죠. 섬기고 봉사는 하려고 하는데 헌신적이지 않고 몸 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후원하고 봉사하려고 하면 손이 중간쯤 나오다가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는 은혜롭지 못합니다.

 

이런 교회는 형식적입니다. 예배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봉사나 후원이 되겠습니까? 모임을 가지려고 하면 자기 일에 매어 꼼짝달싹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리고 늘 하는 말이 ‘못 들었는데요.’ 시간이 없는데요. 하면서 자꾸 빠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성장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재원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는 교회가 되고 맙니다.

 

바울은 늘 형식적이고 자기들끼리만 놀기 좋아하고 그러다가 교회에 사건이 생기면 그들이 편이 되어 교회의 갈등을 형성하는 고린도교회에 아주 좋은 교회 이야기를 합니다. 그 교회는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이라고 애정을 표현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도 ‘주예수 앞에서 자랑하고 면류관’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기간 동안에 어느 누구에게서든지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후원해주는 것을 받아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를 돕고 후원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늘 겸손히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바울은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소개를 합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 은혜로운 교회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고백의 특징을 가졌습니까? 은혜로운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자랑 쟁이, 소문 쟁이 이십니까?

 

1. 은혜로 사는 사람은 늘 감사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유대교인들이 교회를 훼방합니다. 그러니 교회의 형편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유대인들은 동네 사람들은 교회를 가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거기에 가난합니다. 이만저만 어려운 형편이 아닐 수 없습니다.

 

8절의 말씀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복을 소망하고 바라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주의 복으로 넘치게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신15:4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증에 가난한 자가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이런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소망이 없다면 오늘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보통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헌금 못하고, 예배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분명히 참 된 신앙을 고백하고 그 믿음대로 살려는 신앙인에게 복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바라고 소망할 수 있으며 주님이 복 주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겁니다.

 

감사의 신앙이 없다면 예배나 헌금, 섬김과 봉사는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기 때문에 그래도 건강할 수 있고, 그래서 봉사할 수 있고, 그래서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웃는 모습입니다. 환란 중에도 웃고, 어려움이 있어도 웃고, 즐겁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늘 징징거리고 사는 것은 은혜 받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가난한데 어떻게 헌금을 풍성하게 할 수 있습니까? 풍성하다는 말은 ‘과분하다’라는 말입니다. 풍부하고, 여유 있게 헌금했다는 것이죠. 가난한데 여유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풍성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식민지에 있는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은 모든 수입들을 식민지에 탈취당합니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면 하나님은 기쁨을 주십니다. 감사를 주십니다. 은혜롭게 섬기게 합니다. 그것이 나로 말미암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2. 은혜로 사는 사람은 늘 희생합니다. 회생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인들은 희생합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이익을 보려고 하지요. 8:3-5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회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능력껏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희생은 자신의 능력을 뛰어 넘어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힘에 지나도록하는데 그것이 누구의 강요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원함은 은혜가 아니면 안 됩니다. 은혜받지 못하면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명예나,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하여 몸을 먼저 드립니까? 물질을 먼저 드립니까? 물질을 먼저 드린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 들고, 자존심 상하고, 낙심하고 믿음이 떨어지는 것이죠. 그러나 내 육신을 주님께 드리면 자존심이고 뭐고 없는 것입니다. 아니 내 몸을 드리는 게 물질 그까짓게 뭐라고 못 드립니까? 하나님께 내 육신과 마음을 먼저 드리면 그 이외에 어떤 것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내 육신 이외에 눈에 보이는 것은 남는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 교회들은 이런 원리로 헌금을 해도 풍성하고, 넉넉하게, 아끼지 않고 지나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는 장사 한 번 해 보시죠. 육신을 주님께 드리지 못하면 늘 부족합니다. 늘 아깝습니다. 늘 인색해서 체면유지도 못 합니다. 그러나 육신과 마음을 주님께 먼저 드리면 내 육신이외에 모든 것은 남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나머지는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3. 은혜로 사는 사람은 항상 넉넉합니다. 부족해도 부족할 수가 없는 겁니다. 7절의 말씀을 보세요.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이제는 말이 아닙니다.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식과 말과 생활이 되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에 처할 줄로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하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은혜로우면 내가 가진 지식도 은혜가 됩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이 은혜로워집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은혜로우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합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은혜스럽게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어려운 짐을 지어 주기 위하여 헌금을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믿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채워 주심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은혜입니다.

 

그렇게 본을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시범조교로 바울은 디도를 보냈습니다. 디도에게 고린도 교회가 싸우고, 갈둥 하는 것은 은혜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바울은 디도를 은혜로 사는 사람의 시범조교로 보고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에서 은혜받은 사람의 기본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은혜로 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범 조교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은혜로 사는 것인지 보여주는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넘친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줄 수 있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우리 진주 구세군교회가 은혜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없지만 넉넉하고 나누고, 베풀고 섬기는 성도둘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서로 볼 때 은혜가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복 주실 수밖에 없는 정말 특별한 교회가 되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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