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영혼을 책임지는 사람들(2016.10.09)
이한슬 작성시간 2016-10-12 13:17 조회수 2742


설교제목 : “영혼을 책임지는 사람들"
성경본문 : 마태복음 10장 27절~33절
설 교 자 :   담임사관
설 교 일 :  2016. 10. 09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 부르시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행복과 평안, 그리고 자유를 선포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이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조건 기쁨이나, 즐거움만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주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귀가 마냥 좋다고 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훼방을 하고 말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분열입니다.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 갈등과 모함, 그리고 극한 이기주의가 난무하게 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일, 교회의 일, 하나님의 사역은 실패와 갖가지 상처들만 남기고 끝나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일, 교회의 일을 하는 데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마귀의 전략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별개가 되는 헛된 열정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 확장의 기회, 교회 성장의 기회, 내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주의 일 하면서 가장 힘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판, 그리고 갈등에 있습니다.

 

사실 어떤 일이든지 일이 완성되거나 끝나버리면 마음이 후련합니다. 문제는 일이 계획되고, 준비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갈등들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존재 합니다. 하나는 갈등, 고민, 분열, 시기와 질투, 그리고 상처로 끝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기도하고, 격려하고, 합력하며, 웃음과 기쁨, 그리고 자원함과 헌신으로, 그리고 희생과 양보함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사역 가운데 임하도록 힘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복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세움에 그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과 고통이 없는 것입니다. 아니 비록 고통과 좌절이 있을지라도 극복할 수 있고, 거기에서 은혜를 발견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하겠다는 사람들의 열정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1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도 전도자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전도를 위해서였으며, 열두 제자를 택하셔서 훈련시키신 것도 전도를 위해서입니다.

 

1. 복음 전도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28절의 말씀을 보세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위한 삶은 이 땅에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몸은 이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몸은 없습니다. 영혼이 존재합니다.

 

몸은 흙으로 왔으니까 흙으로 돌아가도록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육신은 이 땅에서 온전하게 소모시켜야 합니다. 제가 가끔 노부교님이나 사역하시는 부교님, 정교님들이 몸이 편찮으신 것을 봅니다. 팔 다리가 불편해서 걷지도 못하시고, 움직이시기를 힘들어 하시는 분들은 정말 열정적인 삶을 살아 온 겁니다. 주를 위하여 그렇게 고생하식, 수고하신 겁니다. 그렇게 위로를 받으셔야 합니다.

 

육신은 이 땅에서 사는 기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신령한 영혼으로 주님과 함께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신에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는 영혼에 고통을 주는 이를 훨씬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사역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과 복음의 열정이 없으면 힘들고 어렵고 귀찮아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내 모든 삶에 열정적인 구원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사가 귀찮아지고, 정말 복음을 위한 삶을 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자꾸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의 기쁨을 가질 때에만 이 기쁨을 이웃에게 전해주기 위해 열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열정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화목하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면 짜증납니까? 힘이 들고 어렵습니까? 이제 다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태우시기 바랍니다.

 

열정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순할 때 신앙의 힘은 발휘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전도한다면, 체면이나 어떤 직위 때문에 전도하고 봉사에 임한다면 그 삶은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과 구령의 열정은 사명감을 확신하는 자에게 일어납니다. 본문 말씀은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내리신 말씀입니다. 그 사명은 실로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많은 핍박으로 인해 죽음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비록 사람들이 핍박하여 죽일지도 모르나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사명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들을 선택하실 때 마 4:19절의 말씀처럼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존 당시에 이러한 사명감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늘나라를 이 땅의 것과 비슷하게 인식함으로 서로가 높은 자리에 앉고자 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받고 자신들의 사명을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순교까지 당하는 열정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2. 신앙과 복음의 열정은 주님의 약속에 의지되어야 합니다. 마10:29-31의 말씀을 보세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정말 미천한 어떤 것도 하나님의 관심과 질서와 사랑에 따라 움직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손으로 만든 사람, 그 귀중한 보배는 하나님이 얼마나 관심 있어 하시겠어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참새 두 마리에 6,000원 정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존재도 하나님의 관심과 허락하심으로 살고 죽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전하보다도 귀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 삶에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절대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다르게 말씀을 드리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멸망한다는 약속과 같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믿고 외치는 사람이 천국과 지옥이 없다는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기나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죽음까지 각오하고 전도하고자 하겠습니까?. 조금 더 말씀 드리면 그 사람이 교회라는 곳에 나오기나 하겠습니까?

 

정말 삶을 살다보면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복음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진정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 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서지 않으면, 그렇게 교회 생활이나 사회의 삶이 되지 않으면 그야 말로 고통의 연속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은 전합니다. 교회에 와서 교인 된 도리는 합니다. 이것이 곧 열정은 아닙니다. 과연 지금 내가 전하는 이 복음의 삶이 하나님이 정말 좋아하시고, 사람들이 존경을 하는 모범 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신앙의 삶이 단순히 규칙이나 틀을 지키기 위한 삶이 아닌, 감사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동조하고,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쉽습니까? 이런 과정들이 그냥 살다보니 됩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한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그 삶은 그만큼 열정과 관심, 물질의 소비, 시간의 소비가 필요 한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그만큼 겸손과 희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인 삶을 살고 교회와 복음을 위해 살았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반드시 복 주시고, 상급주시리라는 확신이 없으면 그나마 그것도 할 수 없습니다.

 

3. 믿음과 복음의 열정은 죽음을 초월합니다. 본문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 말고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전도에 있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도는 죽음을 초월해서 수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절박한 기회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전도의 기회, 교회 성장의 기회, 내 신앙이 열정적인 기회가 자주 옵니까? 어떤 교회든지 교회가 부흥할 기회, 진정한 나의 신앙으로 복음의 사역을 할 기회는 평생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합니다. 그만큼 교회의 부흥, 신앙의 부흥,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을 불사하고, 죽음이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라는 강조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전파를 하거나, 신앙은 열정이 없으면 힘든 것입니다. 그저 취미 생활이나, 사회 봉사활동 하듯이 하는 것이 신앙의 삶이 아닙니다. 참된 삶의 목적을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생활은 죽음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소위 사랑으로 내 몸을 불사르게 내 주어야 합니다. 비록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분명한 목적이 없는 헌신은 나로 하여금 회의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왜 내가 이것을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되묻다가 포기하고, 상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한 참된 구원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진정한 복음과 신앙의 삶을 사는 의미를 고백하고 있습니까? 이런 분명한 고백이 나로 하여금 신앙과 복음의 열정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 다른 권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구원받은 신앙인으로서 참된 구원을 실천할 수 있는 참된 신앙인인가를 고백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참 많은 행사가 있습니다. 또한 봉사의 기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열정을 가지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이 기회가 구원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가 전도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가 교회 성장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가 내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을 향하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 평생에 교회의 부흥과 신앙의 성숙, 그리고 참된 복과 은혜를 쌓을 수 있는 신앙과 복음의 기회를 만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기 도

 




 (0)
댓글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