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사야 51:1-6 팔빠졌다(11.9)
담임사관 작성시간 2014-11-20 10:40 조회수 4730


설교제목 : “팔빠졌다”
성경본문 :  이사야 51:1-6
설 교 자 :  이덕중 사관
설 교 일 :  2014. 11. 09





사51:1-6

팔 빠졌다

 

 

부산 대연 구세군교회에 장년 재무는 아주 전도에 열정적입니다. 그래서 자기 돈을 들여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목욕 표를 사서 나눠주며 목욕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발마사지를 수강하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발마사지를 하면서 전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전도에 열정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서 교회의 군우들과 함께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재무는 그 어르신을 교회로 가자며 팔을 당기는 겁니다. 한 사람은 교회에 가자고 팔을 당기고, 한 사람은 교회에 안 따라 가겠다고 몸부림을 칩니다. 함께 전도를 하던 군우들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던지 막 숨고 싶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열정적으로 어르신의 팔을 잡아 당겼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 어르신의 팔을 잡아 당겼는지 그만 그 어르신의 팔이 빠져버렸습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죄송하겠습니까? 얼른 병원으로 옮겼죠. 그리고 팔을 고정시켰습니다. 세상에 전도하다가 팔빠진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근데 더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팔이 빠진 그 어르신이 교회에 출석하신 겁니다. 모두들 깜짝 놀랐죠. 혹시 팔이 빠져 다쳤으니까 보상이나 받으러 온 것이 아닌가 하구 말이죠. 그런데 그 어르신의 말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교회이기에 사람 팔을 빠뜨려가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지 참 궁금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나 한 번 찾아가자고 나오셨답니다.

 

그렇게 교회를 출석하시던 어르신이 어느 날 또래 어르신 8명을 교회에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다니시는 경로당, 노인 복지관에서 그렇게 교회자랑을 하더랍니다. 앉으면 교회자랑, 밥 먹으면서 교회자랑, 여행을 가면서 교회자랑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또래 어르신들이 도대체 그놈의 교회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렇게 자랑을 하는지 한 번 따라가 보기나 한다고 오셨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는 그 어르신을 '팔 빠진 노인네'라고 한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래야 합니다. 전도를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신앙생활을 하던지 끝장을 봐야 합니다. 응답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신앙생활의 열매가 여기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 발걸음을 들여 놓으신 여러분, 여러분에게 걸린 사람은 팔을 빼서라도 전도해야 합니다. 그런 열정이 여러분을 살리고 교회를 살립니다.

 

이렇게 뭔가 열정적인 사람이 신앙의 열매도 큽니다. 사람의 팔을 빼는 사람이 하나님께 매달려 하나님 팔을 못 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팔을 빼서라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야, 너 때문에 내 팔 빠지겠다!'고 하시면서 아주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향한 이사야의 경고입니다. 아무리 죄가 무거워도 주님께로 돌아오면 복된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사야는 회개와 은혜의 주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의를 좇는 사람'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원론적인 복음을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당연한 행위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팔이 있다면 그 팔이 빠지도록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야 참 된 신앙인으로서의 이름값을 하는 겁니다.

 

1. 주님의 말씀을 집중해 듣고 생각해야 합니다. 잘 들어야 해답이 나옵니다. 듣지 않고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세요.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신앙적 수준, 행위적 가치를 찾는 사람들의 수준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신앙이 있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소위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의롭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여러분, 답이 나오지 않는 삶을 사시렵니까? 이왕 고생해서 살꺼, 답이 나와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는데 어디에서 답을 찾으시겠습니까?

 

공동 번역 성경은 '정의를 추구하고 야훼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표준 새번역에는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인 아닙니까? 신앙인은 하나님의 의를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의가 발견되는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때 진정한 의와 신앙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들어 이사야는 아브라함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했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소위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뭐든지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 보시면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다"라고 이사야가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많은 사람들을 향해 높이십니다. 그런데 안 되는 것으로 자랑하겠습니까? 잘 되는 걸로 자랑하겠습니까? 잘 되는 것으로 자랑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 잘 듣고, 고민하고, 순종하는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자랑하실 만큼 말씀 잘 듣고, 순종하고, 헌신하시길 축원합니다.

 

2. 뭔가가 되려면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그래도 관심이 있는 데로 시선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이 세상에 시선이 가는 건 웬일입니까? 이거 뭐가 잘못된 건 아닙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14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주의하랍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똑바로 나를 쳐다보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나에게 귀를 기울여라. 나의 백성아, 내 말을 귀담아 들어라"말씀하십니다.

 

저는 눈이 난시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집중이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소리를 들으면 기억을 해야 하는데 기억이 잘 안 되는 겁니다. 나중에 안경을 쓰니까 선생님의 입술을 읽을 수 있고,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는 겁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그만큼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산만해져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어떤 설명을 했는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이 왜 주님을 집중해서 바라보라고 하십니까?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되고, 모든 의와 거룩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모든 것의 원본, 오리지널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것, 내가 가진 것, 그 모든 것은 가짜입니다.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입니다. 이미테이션일 뿐입니다. 모조품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이제 주님을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됩니다. 어떻게 되냐구요. 이렇게 됩니다.

 

3절의 말씀을 보세요. "나 여호와가 시온을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셨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어루만지시면 그곳이 사막이 되었다고 해도 에덴동산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며 간구하시면 하나님은 슬픔과 한숨과 눈물과 원망이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변합니다. 본문에는 창화(唱和)하는 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악기가 동반된 음악과 노래가 있음을 의미 합니다. 기가 막힌 은혜입니다. 여러분, 주님께만 집중하세요. 지금부터 한 3년이라도 주님께 집중해 보세요. 주님이 해결해 주시고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뭔가가 되려면 하나님께만 매달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철봉 매달리기를 해 보셨나요? 턱걸이를 해 보셨나요? 어떤 분은 유난히 턱걸이나 철봉 오래 매달리기를 잘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옛날 학창시절에 체력 검정을 해 보셨죠? 어떤 학생은 시원시원하게 턱걸이를 잘 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한 번 턱걸이를 하면 철봉에 턱을 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닿게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학생들은 철봉 오래 매달리기를 합니다. 어떤 학생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20초를 견뎌내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올라가서 시작하자마자 푸르르 풀려 1-2초 만에 내려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조금만, 그래도 5초는 견뎌보지...하고 안타까웠던 적이 있을 겁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한 번 매달려 보는 겁니다. 그만 두더라도 매달려 보고 그만 두는 겁니다. 해 보지도 않고 실망하고, 원망하고, 갈등해서는 안 됩니다. 5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오직하면 이사야는 하나님의 팔이 심판을 하신다고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팔에 매달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팔이 빠지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팔이 빠지던지 말이죠. 하나님의 팔은 힘을 상징합니다. 능력을 의미 합니다. 강력한 도움을 하나님의 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은 영적인 구원함도 있지만 육체적인 구원도 있습니다. 우리의 영과 육이 주로 인하여 행복해야 합니다. 그 구원의 시작이 주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구원하심,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결코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폐하지 못하는 것이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 사랑과 그 은혜가 내게 임하도록 매달려야 합니다. 마치 야곱이 주의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 뼈를 얻어맞아도 놓지 않은 것처럼 여러분, 지금이 은혜의 기회입니다. 지금 이 어려움이 복 받을 기회입니다. 지금 이 고통이 화해의 기회입니다.

 

말씀으로 매달리세요. 기도로 매달리세요. 봉사와 헌신과 전도로 매달리세요. 무엇을 하든지 내 신앙을 하나님께 보여 주세요. 하나님의 팔이 빠지도록 간구해 보는 겁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저와 여러분의 팔이 빠지도록은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묵상하세요. 그리고 주의 말씀에 집중하여 똑바로 바라보세요. 그리고 팔이 빠지도록 매달리세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상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한눈팔지 않는 이상 주님이 해결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매달려 애교떨고 조르면 좋은 것으로 안겨 주실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응답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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